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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디자인이 우선 아냐...새 문화콘텐츠 담아낼 공간 짓는 것” [부동산 플러스]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장윤규·신창훈 대표
둥글거나 삐뚤고 비대칭에 불규칙한 건축물
어린시절 상상화 속 등장할 법한 디자인
도시·문화 시스템 만드는게 새로운 건축
어떤 콘텐츠 공간 만들지 정한 후 디자인
대치동 크링, 콘텐츠 제안해 만든 첫 건물
지역 커뮤니티 문화 활성화하는 방법 고안
사회문화 소통속 ‘건축 외형 넓히기’ 발걸음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장윤규(왼쪽) 대표와 신창훈 대표. 김은희 기자
서울 성동구 ‘성동문화예술회관’ 전경. [남궁선 작가 제공]
서울 노원구 ‘불암산 전망파빌리온’ 전경. [남궁선 작가 제공]

네모반듯한 도시에서 눈에 띄는 건축물이 있다. 그들은 대개 동그랗거나 삐뚤고 비대칭적이며 불규칙하다. 이 모든 특징을 갖춘 건물을 짓는 건축가그룹이 바로 ‘운생동’이다. 적어도 일반인의 눈에 운생동의 작품은 하나같이 독특하고 기발하다. 어린 시절 그렸던 상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디자인이다. 그래서 신선하고 또 재밌다. 톡톡 튀는 건축디자인의 원천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장윤규·신창훈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눈 지 10분 만에 이런 호기심은 산산히 부서졌다.

“동그라미냐 네모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새로운 디자인의 멋진 건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대한 디자인이라고 할까요. 도시와 문화, 그 시스템을 만드는 게 새로운 건축입니다. 공간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문화적 콘텐츠를 우리가 제안해서 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사무실에서 만난 두 대표의 소신은 뚜렷했다. 단언컨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특별한 디자인의 건물을 짓는 이들이었지만 디자인이 우선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두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야기로서의 건축’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장 대표는 “지금은 새로운 건축이 필요한 시대”라며 “개념적 건축이라고 얘기하는데 우리가 콘셉트를 만들고 그 콘셉트 자체가 공간이 되고 그 공간이 형태가 되는 건축을 하자는 게 운생동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운생동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크링’의 내부 모습. [Sergio Pirrone 제공]

현재 푸르지오 써밋 갤러리로 쓰이는 강남구 대치동의 ‘크링’을 예로 들었다. 동그란 파사드(입면)의 화려한 디자인이 눈에 띄는 크링은 운생동이 콘텐츠까지 제안해 만든 건물의 시초격이다. 운생동은 단순한 견본주택이었던 크링에 문화센터의 개념을 넣었다. 장 대표는 “공간을 큐레이팅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미술관처럼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고 건축주가 동의하면서 재미있는 작업이 됐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단순히 건물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그 속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건축이라고 그들은 보고 있다. 신 대표는 “주어진 프로그램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문화적 콘텐츠를 담아낼 공간을 먼저 제안하느냐에서 그냥 건축가와 창의적인 건축가의 차이가 나온다”고 말했다. “오히려 무언가와 똑같이 해달라고 하면 하기 싫던데요” 신 대표가 웃으면서 말하자 장 대표도 맞장구를 치며 “우리는 안 보던 새로운 것을 하는 팀”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두 대표도 디자인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다. 문화적 콘텐츠로서의 건축을 실현하기 위해선 사람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통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고 해도 사람이 찾아와야 소통하죠. 아무도 안 오는 공간이라면 의미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선택한 어트랙션(끌림) 포인트가 디자인적인 느낌을 새롭게 가져가자는 거예요. 그래야 사람들이 재미있어하죠.” (장윤규 대표)

장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신 대표는 “그렇지만 형태를 먼저 만들고 그 안에 프로그램을 끼워 넣진 않는다”며 단서를 달았다. 그는 “어떤 콘텐츠를 가진 공간을 만들지 정한 다음에 디자인을 더한다”며 “형태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생동은 특히 공공건축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 업계에서 ‘공공건축의 선두주자’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신 대표는 “대중에게 좋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건축가의 큰 역할이자 선한 의무”라며 “작든 크든 다양한 공공건축에 많이 참여해 지역 커뮤니티 문화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도시 네트워크의 변화를 끌어내는 방향성을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 골목시장 커뮤니티의 모습. [윤준환 작가 제공]
서울 노원구 월계동 ‘한내지혜의숲’의 모습.[Sergio Pirrone 제공]

운생동은 중랑구 면목동 골목시장에 상인과 지역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을 만들었고 노원구 월계동 중랑천 가에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한내지혜의 숲’을 지었으며 불암산 초입에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전망대를 찾아오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모두 공공건축이지만 운생동과 만나면서 어느 상업공간보다도 개성 있는 건축이 됐다.

“어린이집을 예로 들어보겠다”고 운을 뗀 장 대표는 “어린이가 집을 떠나 처음 만나는 공간인 어린이집이 상상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공간이라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겠냐”며 “공간을 바꿔주면 사람도 달라진다”고 했다.

무엇보다 작은 공공건축에 애정을 쏟는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장 대표는 “시내에 대형 도서관을 짓는 것과 동네마다 조그마한 도서관을 만드는 것 중에서 무엇이 변화가 크겠냐”면서 “도시를 바꾸고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삶을 바꿀 여지가 강한 것은 후자인 작은 건축”이라고 단언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건축이 아닌 직접 만지고 경험하는 건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대형마트는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가지만 동네 편의점은 하루에 한 번, 어쩔 땐 두 번도 가지 않나요. 사람들의 실제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건 편의점이에요. 작은 건축이 중요한 것도 비슷한 이유죠.” 신 대표의 비유에 장 대표는 허허 웃어보였다.

신 대표는 작은 공공건축 현상설계라고 콘텐츠에 대한 고민 없이 접근하는 풍토에 쓴소리를 냈다. 그는 “지역마다 필요한 게 다른데 매뉴얼대로만 짓다 보면 어디서나 똑같은 특색 없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새로운 건축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신내 콤팩트시티 조감도.[운생동건축사사무소 제공]

운생동이 준비 중인 도로 위 주택 ‘신내 콤팩트시티’도 말하자면 완전히 새로운 건축이다. 신 대표는 “건축 설계만이 아닌 도시, 교통, 조경, 지구단위 등이 통합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공간”이라며 “좁은 서울 땅에서 어떻게 새로운 도시를 만들 수 있는지 새로운 롤 모델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운생동은 다각적인 건축문화 네트워크도 시도하고 있다. 유튜브 ‘건축공감’을 통해 현대건축 아카이브를 만들어가고 사단법인 ‘스페이스 코디네이터’를 통해 젊은 건축가와 예술가의 새로운 도전을 지원하고 있다. ‘갤러리 정미소’를 통해 실험적 예술가를 후원하는 등의 문화기획도 하고 있다. 사회문화관계 속에서 건축의 외형을 넓히기 위한 발걸음이다.

장 대표는 “새로운 생각은 건축에만 있는 게 아니다”며 “다양한 분야의 소통을 통해 건축적 깊이를 실현해야 사회문화시스템을 디자인하는 새로운 건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겠냐”고 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저희는 선택을 했어요. 재미있으니까” 장 대표가 말하자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 저희가 하는 거죠” 신 대표가 거든다. 27년째 한배를 타는 건축가그룹의 수장다운 ‘티키타카’다.

김은희 기자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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