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정의 현장에서]위기때 빛나는 ‘혁신마일리지’…우리는?

지금이야 코로나19 백신이 남아 처치 곤란일 정도지만 지난해만 해도 백신 수급경쟁이 거의 전쟁 수준이었다. 백신전쟁에서 눈에 띄는 승자는 이스라엘이었다. 화이자가 임상이나 백신 공급처로 이스라엘을 1순위로 택했던 까닭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2020년 12월부터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 대규모 접종을 시작했고, 지난해 7월 부스터샷(3차)과 12월 4차 접종 임상도 세계 최초로 시행했다.

최근 기자가 만난 이스라엘의 한 벤처캐피털(VC)회사는 화이자가 이스라엘을 가장 먼저 선택한 이유는 각종 ‘혁신 의료 시스템’ 덕분이라고 표현했다. 2004년 설립된 이스라엘 기업 디비모션(dbMOTION)은 프라이버시 문제를 피해 병원 간 의료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원격 진료 시스템도 1997년 SHL이 개발해 현재 글로벌 시장 1위다.

이스라엘은 백신 접종자의 이상 현상 등 각종 데이터를 화이자와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혁신을 일찍 받아들인 덕분에 화이자가 이스라엘을 선택해 백신 공급 1순위라는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비하면 한국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백신 수급은 물론 의료 분야 혁신 서비스 도입 자체도 그렇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덕분에 한시적으로 허용됐지만 업계는 여전히 ‘악마의 디테일’에 숨을 죽이고 있다. 어느 선까지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느냐에 따라 업계의 생사가 갈리기 때문.

보건복지부는 거동 불편 환자 등을 대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추진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의료계는 재진 환자와 만성 질환자에게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격 의료 플랫폼기업들의 모임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재진·만성 질환자에게만 비대면 진료가 열리면 사업성이 흔들린다고 우려한다.

이처럼 첨예한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직역단체와 신사업군의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일 비대면 진료 플랫폼 ‘솔닥’을 운영하는 아이케어닥터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지난달 서울시의사회도 비대면 진료플랫폼기업 닥터나우가 의료법·약사법을 위반했다며 관계당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런 고발이 난무하는 와중에 규제혁신을 통한 국민 편의 증진이란 국정목표는 방향을 잃고 표류 중이다. 국민 편의 증진의 발목을 잡는 직역이기주의는 평상시에는 그 부작용을 체감하기가 어렵다. 경험해보지 않은 혁신의 혜택이 상상이 되지 않아서다. 그러나 전 세계가 3년째 고통받는 감염병 등 위기상황에서는 규제혁신을 게을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이스라엘의 2차 접종률이 50%를 넘어섰던 지난해 3월까지도 한국은 노인 등 우선 대상자나 의료인 정도만 백신 구경을 해봤을 정도다. 향후에도 한국의 혁신성을 높이 평가한 굴지의 제약사들이 백신을 최우선 공급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여전히 잇속 다툼에 매몰된 모습을 보자니 위기는 외부에서 불러들인다기보다는 언제나 내부에서 만들어낸다는 경구가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