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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안 망했는데?” 덕후만 노리는 잡스러운 ‘그들’ [H.OUR]
미스테리 장르소설을 다루는 매거진 '미스테리아'.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하루 걸러 '망한다, 망한다' 하면서도 아직 망하지 않은 업계가 있습니다. 간행물 시장이 그런데요. 그 중에서도 오늘의 정답은 바로 ‘잡지’입니다.

저무는 시장으로 불리던 매거진 업계가 나날이 잡(雜)스러워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잡지협회에 따르면, 2016년 4931개였던 발행잡지 개수는 2021년 5459개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기현상의 정체를 들여다보니 미스테리·SF·철학 등 덕후들을 겨냥한 마니악한 전문 잡지들이 약진했습니다. 디지털 홍수 속에서 겁도 없이 창간한 '간 큰' 신생 종이 잡지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촘촘한 정체성이 얼마나 막강할 수 있는지 새삼 일깨워줍니다.

서울의 한 서점 잡지코너에 진열된 월간·계간 잡지들의 모습. [김유진 기자/kacew@]

더운 여름 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만한 잡지가 있다면 미스테리 잡지겠죠. 추리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 엘릭시르의 ‘미스테리아’(2015년 6월 창간)는 CSI 시리즈를 비롯한 수사물에 심취한 독자들을 유혹 합니다.

‘시신이 부패할 때 가장 먼저 날아오는 벌레는?’ 같은 질문의 정답이 궁금한 적 있었나요? 미스테리아 9호(과월호)에는 그 답이 나와있더군요. 생생한 곤충 일러스트와 함께요. 최근 영화 ‘헤어질 결심’ 속 박해일이 맡은 형사 배역에 과하게 몰입한 마니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잡지 입니다.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김영하 ‘작별인사’나 김초엽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에서 다루는 테마에 구미가 당겼다면 본격적으로 SF를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올초 창간한 SF 전문 계간지 ‘어션테일즈’(The Earthian Tales)는 SF 장르에 입문한 순문학 독자들을 빠르게 흡수할 것으로 기대되는 잡지 입니다. SF 전문 출판사 아작이 창간한 이 잡지엔 필진으로 익명의 SF작가 듀나 등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도 포진해 있네요.

건축재료의 모든 것을 담는다는 ‘GARM’(왼쪽). 신재생에너지 기업인 소울 에너지와 볼드 피리어드가 만든 기후 위기 대응 매거진 ‘1.5℃’(오른쪽).

스마트폰을 켜면 종일 ‘오늘의집’을 들여다보는 인테리어 고수라면, 지난해 창간한 ‘GARM’(감)을 추천합니다. ‘실내 마감재로 어떤 수종의 나무를 쓰는 것이 좋을까?’ 같은 전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거든요. 마치 한 놈만 팬다는 정신으로 ‘좋은 재료’, ‘좋은 나무감’, ‘벽돌감’ 그리고 ‘콘크리트감’ 등 건축 재료를 구분하고 사용하는 데 필요한 안목을 총망라했습니다.

신차로 전기차를 고려하고 있다면 지난해 9월 창간한 신생 잡지 ‘1.5℃’ 어떨까요. ‘테슬라가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부터 ‘전기 바이크로 멸종위기 코끼리를 구하는 법’ 같은 독립영화 제목 같은 기사까지 알차게 담겨 있습니다.

이름마저 생소한 ‘생활 철학’을 테마로 한 잡지도 있습니다. 2013년 호주에서 창간한 뒤 2018년 국내에 상륙한 ‘뉴필로소퍼’ 입니다. 철학 잡지라고 해서 각 잡고 철학자의 계보 같은 걸 읊는 따분함을 상상한다면 오해입니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이지만 생활과 닿아있는 이야기를 다루더군요. 최신호가 다룬 주제를 보면 어떤 잡지인지 대강 느낌이 오겠죠. 다름 아닌, 인류사 대대로 갈급해온 화두, ‘사랑’(♥) 입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매거진 라이브러리. [서울디자인재단]

내친김에 매거진을 테마로 새롭게 문을 연 라이브러리도 소개 해볼까요. 시대를 ‘역행’하는 문화적 실험을 해보겠다는 셀프 디스를 하며 ‘매거진 라이브러리’가 13일 문을 열었습니다.

매거진 라이브러리는 그래픽·산업디자인·건축·인테리어·패션·라이프스타일 등 107종의 국내외 매거진을 보유한 도서관 입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 3층에 들어선 공간인데요, 장소가 장소인만큼 디자인 분야 잡지가 가장 많습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매거진 라이브러리’. [김유진 기자/kacew@]

“틀림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개관을 알리는 포럼 자리에서 솔직하게 운을 뗀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발행인의 말은 사뭇 비장하게 들렸습니다.

“전문지는 분화된 분야를 가진, 시장도 타겟도 ‘미니’인 미니 미디어 입니다. 돈도 미니로 벌고요. 그렇지만 이곳에 온 (소수의) 사람들은 바람이 어디서 어느 쪽으로 부는지, 누가 그 선봉에 섰는지 틀림없이 알게 될 겁니다. ‘맥시멈’의 힘을 내서 정기 발행하겠습니다”. 이 발행인을 비롯한 잡지인들의 각오일 겁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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