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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 넘겨라” 37년 골목길 노포 철거될 듯…스러져가는 을지면옥 [언박싱]
37년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 결국 헐릴 듯
을지면옥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22일 재개발에 들어간 서울 중구 충무로 세운지구. 빽빽하게 들어선 낡은 건물 사이로 1985년 문을 연 을지로 냉면집 노포집이 있다. 외식문화가 없던 시대부터 시작해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평양냉면으로 시대를 풍미한 곳, 바로 ‘을지면옥’이다.

“회식 장소로 인기가 많았어요, 냉면으로 해장하는 ‘선주후면(先酒後麵)’ 문화가 여기서 시작됐죠.” 전직 공무원 권진옥(72) 씨가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달걀, 수육, 파 등 비교적 단출한 고명 위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을지면옥 평양냉면은 의정부 계열 냉면으로, 1·4후퇴 때 월남한 고(故) 홍영남, 김경필 씨 부부가 1969년 개업한 의정부 평양면옥이 그 뿌리다.

딱 잡히는 맛없이 슴슴하고 단순한 음식이지만, 그 맛에 이끌린 애호가들의 ‘추앙’이 이어지면서 이곳 평양냉면은 을지로 골목의 대표적인 ‘터줏대감’이 됐다. 실향민 1세대가 망향의 아픔을 달래던 음식이 실향민 2세대와 식자층 베이비붐 세대를 거쳐, 그렇게 제2의 부흥을 맞게 된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도장깨기를 하듯 평양냉면에 입문한 2030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완냉샷(냉면을 비운 그릇 사진)’을 올리면서 여름철 특별한 먹거리로 떠올랐다.

을지면옥 평양냉면
을지면옥 모습 [연합]

그런데 을지면옥이 재개발 시행사에 건물을 넘겨줘야 한다는 법원 결정이 나오면서, 서울시와 소송전까지 불사하며 영업을 계속한 을지면옥이 철거를 해야할 상황에 놓였다. 서울고법 민사25-2부는 세운지구 3-2구역 시행을 맡은 A사가 을지면옥 측을 상대로 낸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을지면옥이 A사에 건물을 인도하라”고 이달 14일 명령했다.

재판부는 “을지면옥의 인도 거부로 사업 진행이 지연되고 있어 A사가 거액의 대출이자 등 상당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며 “본안 판결을 기다릴 경우 A사 등에 가혹한 부담을 지우는 결과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을지면옥으로서는 보상금 액수에 대한 불만 이외에는 달리 이 사건 사업을 반대할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이고, 보상금 적정 여부는 별도로 다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건물 인도 가처분이 집행되면) 을지면옥은 본안소송에서 다퉈볼 기회도 없이 현재 상태를 부정당하게 된다”며 A사 측 신청을 기각하고 을지면옥의 손을 들어준 1심을 뒤집은 결정이다. 을지면옥 측은 세운지구 관리처분 계획 인가 과정에 편법·위법이 있어 무효인 데다 손실보상도 완료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초 을지면옥이 위치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은 2017년 재개발사업시행 인가를 받아 2019년 하반기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당시 시행사는 현지 영업주들의 분양신청을 받았으나 을지면옥만 분양신청을 하지 않아 현금청산 대상자가 됐다. 시행사는 서울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두 차례 수용재결을 신청했고, 위원회는 을지면옥 부지와 영업권에 대한 손실보상금 56억원 상당으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을지면옥 측이 건물을 인도하지 않자 시행사는 건물 인도를 구하는 본안 소송과 함께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 신청을 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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