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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에서]취약계층 공공일자리 없애면서, 반도체 인력양성은 세금으로?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너 같은 놈 하나 키우는데 세금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 알아?” 2007년 종영한 문화방송(MBC) 드라마 ‘에어시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인 김지성 국가정보원 요원(이정재 분)이 규정을 어겨서라도 억울하게 죽은 동료의 복수를 위해 나서겠다고 덤비자, 그가 해고될 걸 우려한 그 상관이 호통을 치면서 한 말이다. 그 상관의 말처럼 인재를 키우려면 비용이 들고, 그 인재가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게 당연하다.

공무원도 아닌데, 민간기업 인력양성 비용을 국가가 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반도체 기업들이 그렇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폴리텍대학은 대기업 반도체 생산인력을 대거 배출하는 곳이다. 반도체 취업 전국 1위 대학인 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를 지난 5월 찾아가봤다. 나랏돈으로 운영하는 이 학교의 반도체클린룸 등 내부를 보면 반도체공장과 다를 바 없다. 학생들은 한 장에 30만원이 넘는 웨이퍼도 실습에 아낌없이 쓴다고 했다.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클린룸의 실리콘 웨이퍼 메탈 필름 증착 실습 장면.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이에 더해 이 대학은 정부 예산 135억원을 들여 오는 2024년 연면적 1224평, 지하 1층 지상 3층의 인력 양성센터를 설립한다. 졸업할 때까지 드는 돈은 어지간한 대학 한 학기 등록금 수준에 그친다. 학생 입장에선 매우 훌륭한 학교다. 그러나 이 학교의 최대 수혜자는 이 학교 졸업생을 고용하는 기업이다. 드라마 속 국정원 국장이 이야기하는 ‘너 같은 놈’을 세금으로 다 키워서 보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어쩐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숙련된 기술자들을 대가 없이 고용한 이들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이익은, 국가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이럴까. 아니다. 예컨대 독일 등 선진국에선 우리 대한상공회의소 같은 곳에서 기금을 모아 그 역할을 한다. 대학이 아닌 기업이 내 비용을 들여 숙련공을 양성하는 ‘마이스터’를 키우고, 기업이 고용한 마이스터들이 숙련공을 길러낸다. 나랏돈으로 직접 숙련공을 양성해 기업에 제공하는 형태는 과거 정부 주도형 산업개발시대가 낳은 기형적인 구조다.

실제 우리 직업능력개발사업 예산은 고용보험기금으로 편성된다. 대부분 사업주들이 납부하는 계정에서 나가지만, 해당 예산의 규모가 적잖은 만큼 직장인들이 낸 고용보험(일반회계계정)으로도 일부 부담한다. 하지만 정작 해당 사업의 참여율은 납부 기업의 4% 남짓이다. 중소 사업주들은 이런 직업능력개발사업의 존재 여부도 잘 모른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생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잘 몰라 제 임금을 다 받지는 못하는 것과 똑같다. 정책 집행에서 ‘양극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새 정부 경제정책 기조는 ‘규제 줄이고 간섭하지 않을 테니 기업이 알아서 투자도 늘리고 양질의 일자리도 대거 창출하라는 것’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5%에서 22%로 낮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수는 줄고, 복지도 줄어들 것이다. 취약계층의 버팀목이던 ‘노인 일자리’ 예산은 내년부터 대폭 삭감될 예정이다. 그런데 대기업에 대해선 직업능력개발 지원을 명분 삼아 나랏돈으로 신입사원 교육까지 시켜주고 있다. 시장경제와 공정이 원래 이런 것이었나, 헷갈린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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