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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놓고 ‘개인정보 유출’ vs ‘소비자 권익보호’
배진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발의 후
신경외과·산부인과·정형외과 의사회 줄줄이 반대 성명
인수위, 우선 시행과제로 꼽혔지만 국정과제엔 빠져
실손보험 TF에서도 거의 논의 안 돼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최근 발의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놓고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의사들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를 내세우며 법안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보험업계와 보험가입자들은 ‘소비자들의 권익’으로 이에 맞서는 상황이다.

보험업계는, 지난 9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에 대해 의료계가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고 비판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내는 서류들을 전산화하자는 것이 왜 자료 유출로 이어지는지 모르겠다”며 “의료계가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로 비급여 부분이 공개되게 되면 병원 수익이 줄어들 것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여겨진다.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병원들이 가격을 직접 책정하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증빙서류가 관계기관에 제출될 경우 가격 통제 우려가 있어 기존대로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 역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가입자가 기존에 냈던 종이영수증을 파일로 정리하자는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디지털정부를 국정과제로 표방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거치면서 이를 거스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배 의원은 지난 9일 보험가입자가 건강심사평가원(심평원에)에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위탁하고, 심평원이 보험금 청구와 지급에 필요한 서류를 관리함으로써 개인 의료정보 유출 및 악용을 막는 동시에 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배 의원의 법안 발의 후 의료계는 잇달아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신경외과의사회·정형외과의사회·산부인과의사회·신경과의사회 등이 줄줄이 성명을 통해 법안 폐지를 촉구했다. 배 의원의 법안이 환자의 진료권 제한은 물론, 개인 의료정보 보호 원칙을 무너뜨려 향후 실손보험사들의 배만 불려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는 병원에 진료비를 지급한 후 피보험자가 요양기관으로부터 영수증, 진단서, 진료비 세부 내역서 등의 종이문서를 발급받아 보험금 청구서류와 함께 e-메일이나 모바일앱 등을 통해 직접 제출하는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절차의 번거로움 때문에 소액일 때는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소비자와함께·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가 지난해 4월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2%가 ‘실손보험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30만원 이하 소액 청구 건은 95.2%에 달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권고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법안도 수차례 발의됐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결국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배 의원의 법안을 포함하면 21대 국회에서만 총 6건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발의됐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과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냈다.

대선기간에도 윤석열 당시 후보와 이재명 후보 모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약속했다. 인수위원회는 지난 4월 국민소통 플랫폼 ‘국민생각함’을 통해 14개 생활밀착형 후보 과제의 우선 시행 순위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4323명 중 2003명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꼽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실현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금융 당국은 지난 1월 ‘지속가능한 실손보험을 위한 정책협의체’를 발족하며 실손보험 누수와 함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간 진행된 부처 간 협의는 주로 실손보험 누수에 집중됐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도 결국 빠졌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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