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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기 끝까지 노무현 떠올린 文대통령…‘운명’의 장면 셋[정치쫌!]
文 비서실장 시절 노무현 서거 직접 알려
文"盧는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꼼짝 못하게 돼"
임기 20여일 앞두고 식목원 찾아
"盧심은 나무 잘자랐다, 내가 심은 나무랑 짝 돼야"

[제공=노무현 사료관]

#장면 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양산 모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자격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문 전 실장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경 이곳 양산 부산대병원서 운명하셨다"고 서거를 처음으로 알렸다.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발인과 영결식, 수원 연화장 화장과 봉화산 정토원 안치까지,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는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장례기간 내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모습과 한 켠에서 눈물을 닦고 있는 문 전 실장의 모습은 사람들에 각인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양산 자택에서 칩거하던 문 전 실장은 정치권에서 숱한 러브콜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에 대한 책이라도 한 권 내야 하지 않겠냐’는 이해찬 전 총리의 권유로 수필이자 자서전인 ‘운명’을 썼고, 이 책으로 문 전 실장은 문 대통령은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항마로 순식간에 떠올랐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아야 할 자신의 운명을 이같이 썼다.

이후 그는 2012년 5월열린 19대 총선에서 국회에 처음을 발을 들여놓았고, 그해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마친 뒤 단상에 세워진 노 전 대통령 그림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

#장면 둘. 2017년 5월 23일. 대통령 취임 후 맞은 노 전 대통령의 첫 기일이다. 문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추도식 행사장에 들어섰다.

'당신, 거기서도 보이십니까/산산조각난 당신의 운명을 넘겨받아/치열한 희망으로 바꾸어온 그 순간을 순간의 발자욱들이 보이십니까/당신, 거기서도 들리십니까/송곳에 찔린 듯 아프던 통증의 날들 그 하루하루를 간절함으로 바꾸어 이겨낸 승리를/수만 마리 새떼들 날아오르는 날갯짓 같은환호와 함성 들리십니까/당신이 이겼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시인인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의 추도시 '운명'이 낭독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앞으로 임기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며 "현직 대통령으로서 추도식에 참석하는 것은 마지막이 될 것"이라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린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약속대로 임기동안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참모회의든, 공식석상이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계속됐다.

그리고 퇴임이 가까워질수록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달 25일 JTBC에서 방영된 손석희 전 앵커와의 대담에서도 정부내내 추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원위치가 된 듯하다는 질문에 “노무현·문재인 정부, 두 정부 동안 한 건도 북한과 군사적 충돌이 없었다. 반면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땐 천안함, 연평도, 목함지뢰와 같은 군사적 충돌이 있었고 우리 군인들, 심지어 민간인까지도 희생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며 "누가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잘 지킨 것이냐. 진보 정부가 훨씬 잘 지켰다”고 했다.

4일 있었던 백서 발간기념 국정과제위원회 초청 오찬에서도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다시 소환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가 남긴 자료를 언급하며 “ 통계자료와 지표들은 또 다음 정부, 그다음 정부와 늘 비교가 됐다. 그 비교를 볼 때마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안보에서도 훨씬 유능했구나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점점점 많이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2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에서 기념식수를 한 뒤 최병암 산림청장, 최영태 국립수목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 나무는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식수. [연합]

#장면 셋. 지난달 25일. 문 대통령은 기념식수를 위해 국립수목원을 찾았다. 문 대통령이 심은 식수 옆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심은 주목이 자라고 있었다. 지난 2007년 5월 17일 노 전 대통령은 17년생 주목 한 그루를 기념 식수를 했다. 이때 문 대통령은 '문 실장'으로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다.

"아이고 다해버렸네"라며 25년생 금강송 식수를 마친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에게 "(노 전 대통령이 심은 주목을) 한번 보고가자"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심은 주목을 본 문 대통령은 "많이 자랐다"고 짧게 말했다. 동행한 최병암 산림청장이 "(노 전 대통령이) 이거 심으실 때 (문 대통령이) 같이 오시지 않으셨냐"라고 묻자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느티나무를 좋아하셨다. 느티나무는 아주 넓게 퍼지니까 공간이 넉넉해야 한다.. 공간이 조금 부족하다고 그래가지고 고심 끝에 주목을 선택한 걸로. 그때 왔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자신이 심은 나무와 노 전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자라면 짝을 이루겠다"고 했다. 김 여사가 웃으며 "언제 자라겠냐"고 하자 "문 대통령도 "30년 후에는..."이라며 웃으며 대답했다. 식수 행사를 마친 문 대통령 부부는 산책길로 걸어나갔다. 문 대통령의 이날 식수 행사를 보도한 기자들 사이에서는 ‘식수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가려했던 ‘대통령 문재인’이 임무 완수 후 마지막 소회를 밝힌 것처럼 들렸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9일 6시 청와대를 빠져나가 서울 모처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윤 당선인의 취임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식 참석 후 KTX를 타고 양산 사저로 내려간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23일 추도식에서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23일 열리는 노 전 대통령의 13주기 추도식에는 참석 할 것으로 알려졌다. 5년만의 방문이다. /박병국 기자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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