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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각장애인 강용봉 씨, 「열국지 팩트체크(fact-check)-다른 눈으로 본 列國志」 출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파천황(破天荒)의 일” 등 찬사 이어져

[헤럴드경제=박준환 기자]“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대단하다” 이정도 찬사로는 턱없이 모자랐던 걸까.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해냄’을 이르는 파천황(破天荒)의 일이라고까지 하면서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했길래 그럴까?

강용봉〈사진·60〉 씨가 「열국지 팩트체크(fact-check)-다른 눈으로 본 열국지 列國志」란 책 3권(상·중·하)을 펴낸 데 대해서다.

그래서? 책을 냈으면 냈지 뭐가 어째서?

그가 시력이 ‘0’으로 빛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중증의 시각장애인으로서 이 방대한 책을 썼기 때문이다.

오는 18일 오후 4시 여의도 이룸빌딩에서 출판기념회를 열 예정인 저자는 중국 명나라 말엽의 작가 풍몽룡(馮夢龍)이 중국의 기원전 8세기~3세기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형상화한 소설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를 거꾸로 역사적으로 비교하며 탐색한 책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동주열국지」란 소설 속에 용해되거나 함축된 동시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은 허구인지를 가려 보려는 시도였다고 부연한다.

비교분석 대상으로 삼았던 역사 소설만해도 방대하기 그지없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전(春秋左傳)」· 「국어(國語)」,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유향(劉向)의 「전국책(戰國策)」· 「설원(說苑)」, 한비(韓非)의 「한비자(韓非子)」, 안자(晏子)의 「안자춘추(晏子春秋)」, 여불위(呂不韋)의 「여씨춘추(呂氏春秋)」· 「논어(論語)」, 맹자(孟子)의 「맹자(孟子)」, 장자(莊子)의 「장자(莊子)」 등에 기록되거나 전해지는 역사적 사실이나 일화와 비교했다는 것이다.

“역사 소설은 말 그대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반대로 소설 속에 담긴 역사는 뭘까? 그저 허구의 악세서리일까? 그래도 역사일 수 있을까? 이것도 아니면 역사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새로운 ‘허구적 역사’일까? 자주 의문을 가졌다.”

50대 말로 넘어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오랜 직장 생활을 잠시 멈출 기회가 생겨서 그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보낼까 고민하던 차에 「동주 열국지」를 한번 정리해 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저자는 이 책이 7년이란 세월이 걸릴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고 털어놨다.

참고 문헌의 번역본 두서너 가지를 수십번씩 읽어야 하고, 심지어 그 원문까지 샅샅이 봐야 할 줄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동안의 고충을 실토했다.

“「동주열국지」의 시대적 배경이 된 춘추 전국 시대의 대표적인 사서인 사마천의 「사기」를 보게 되었는데, 이들 간에는 공통된 부분이 매우 많지만, 양자 간에는 상이한 것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면 춘추 전국 시대의 다른 사서 즉 「춘추좌전」, 「국어」, 「자치통감」, 「전국책」 등과 「동주열국지」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을 느꼈고, 그 비교 과정에서 위의 사서들과 「동주 열국지」간에는 물론, 위의 사서들 간에도 상이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으로서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료를 수집하고 책을 쓰면서 ▷시각 자료가 아닌 촉독(觸讀) 가능한 자료를 만드는 일 ▷점자 단말기로 출력되지 않는 한자 해독 문제 ▷시각문자의 촉각문제로의 변환과정에서 점자의 한계 등이 무척 힘들었다고 꼽았다.

「열국지 팩트체크(fact-check)-다른 눈으로 본 열국지」에 대해 중어중문학계 내노라하는 전문가도 혀를 내두른다.

임동석 건국대학교 명예 교수는 “첫째 작업 양(量)에 놀랐고, 둘째 그 복잡한 동주시대(춘추전국) 역사 관련 자료를 섭렵하여 고증을 했다는 것에 놀랐고, 셋째 학자나 전공자도 아닌 사람이 이를 어떻게 해냈을까 하는데 놀라움과 한편 의문이 들었다”고 평했다.

임 명예 교수는 건국대 중어중문학 교수를 정년 퇴임했으며 한국중어중문학회장, 중국어문학연구회 장, 한국중국언어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100여편의 학술논문과 「사기」, 「전국책」 등 중국 고전 300여 편을 번역(역주)했으면서도 「다른 눈으로 본 열국지」를 놓고서는 “파천황이란 이럴 때 써야 맞는 말일 것”이라고 서평했다

손병두 삼성경제연구소 상임고문도 “많은 이들의 부탁을 받고 여러 번 추천사를 썼지만, 이번처럼 감동적이고 폐부를 찌르는, 말 그대로 투혼이 담긴 책을 추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적했다.

특히 거기다가 강용봉 씨가 시각장애라는 큰 장애에도 불구하고 한자 투성이의 이같은 책을 썼다고 하니 시각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p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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