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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대통령과 언어학

우리말의 대통령이라는 말과 영어의 프레지던트(president)는 느낌이 다릅니다. 프레지던트는 한 나라에 많죠. 대학마다도 있습니다. 대학의 총장을 프레지던트라고 하고, 모임의 대표를 프레지던트라고 합니다. 대통령에 빗대어 소통령이라는 표현도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 대통령은 한 명입니다. 크게 거느린다고 해서 대통령(大統領)입니다. 대통령이라는 말에는 권위와 권위적인 느낌이 동시에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도 이 명칭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저는 종종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부르는 호칭은 변화하였습니다. 대통령 앞에서 대통령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예전에는 고민이 없었습니다. ‘각하’ 또는 ‘대통령 각하’라고 불렀습니다. 폐하나 전하에 견줄만한 권위적인 느낌이 컸습니다. 그래서 각하라는 말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온 겁니다. 각하를 빼고 나니, 호칭이 좀 곤란해 졌습니다. 이 때 자연스럽게 등장한 호칭이 ‘대통령님’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부를 때는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호칭과 지칭은 다릅니다. 지칭은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따라서 지칭은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께 형을 가리켜 이야기할 때 ‘형님께서 식사를 하십니다.’와 같이 표현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 됩니다. 당연히 ‘형이 밥을 먹습니다.’와 같이 표현해야 합니다. 이처럼 가리키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높으면 높임법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높임을 압존법이라고 합니다. 가리키는 이를 높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는 높임법인 셈입니다.

압존법에 따르자면 청와대의 회의나 국무회의, 정부 부서 내의 회의에서라면 ‘대통령님께서’라고 표현해도 무방합니다. 그들 중에서는 대통령이 제일 높으니까요.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이나 관계자들, 정부 관료들이 국민을 상대로 대통령을 가리킬 때는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대통령이 높은지, 국민이 높은지. 국민이 높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 순간 표현은 ‘대통령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야기하셨습니다.’가 아니라 ‘이야기하였습니다.’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압존법을 쓸 때는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을 보여줍니다.

대통령 식구에 대한 표현도 늘 논란이 됩니다. 대통령의 부인은 ‘영부인(令夫人)’, 대통령의 아들은 ‘영식(令息)’, 딸은 영애(令愛)라고 표현합니다. 사전에 보면 윗사람의 부인, 자식을 의미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만, 주로는 대통령과 관련된 가족을 가리킬 때 쓰입니다. 보통명사로 쓰였던 말이 특수한 사람을 쓰이는 말로 변화한 것입니다. 최근에 영부인에 대한 호칭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대통령 배우자라는 말을 쓰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영부인이라는 표현이 권위적이라는 느낌에서 나온 의견으로 보입니다. 저는 논란이 생길 때는 간단한 쪽으로 정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부인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을 고민하지 말고, 대통령 부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간단한 해결책일 겁니다. 다른 사람 부인도 그런 식으로 부릅니다.

언어는 사고를 반영합니다. 그래서 언어에 대한 태도는 그 사회의 사고를 반영하고 있는 겁니다. 언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모습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명칭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가끔 '종'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 불편합니다. 자신이 종이라고 말하면서 왕처럼 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국민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고달픈 자리입니다.

하나 더, 시대는 바뀌었는데 여전히 예전의 표현을 가져와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무총리를 ‘만인지상 일인지하’라고 표현하거나 대통령 부인을 ‘국모’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두 박물관에 넣어두고 감상할 우리말입니다. 고어사전에 담아두어야 할 옛 표현인 셈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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