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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은의 현장에서] 혁신 좇던 빅테크, 자기반성의 계절

“은행들이 다 이유가 있었네요.” 빅테크 관계자들에게 최근 자주 듣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기존 은행을 ‘혁신 없는 고루한 조직’이라고 평가했다. 자기들은 ‘하면 된다’지만 은행들은 ‘되면 한다’는 얘기였다.

자신감 넘치던 이들이 반성의 시간을 보내는 건 몇 가지 경영상 실수를 겪고 나서다. 토스뱅크는 지난해 10월 하루만 예치해도 연 2%를 지급하는 파킹통장을 출시했다. 파킹통장이 경영상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다른 은행과의 차별화라는 자신감 아래 간과됐다. 혁신의 대가는 컸다. 뚜껑을 열어보니 최상위 고객들이 우르르 파킹통장에 몰린 것이다. 출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1억원 초과 예금에 0.1%의 낮은 금리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 있었다.

‘하면 된다’ 정신이 독이 된 사례는 또 있다. 토스증권이 내놓았던 10대 청소년 대상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가 그렇다. 토스증권은 당국의 명확한 해석이 내려지지 않았을 뿐 위법은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중단하게 됐다. 금융에서 혁신은 규제를 가장 빡빡하게 판단했을 때 가능하다.

벤처 정신의 논법으로 해왔던 선택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된 사례도 있다. 카카오페이 임원들의 주식 대량 매도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상장 후 스톡옵션 행사 주식을 대량 매도해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 벤처업계에서는 흔한 일인 데다 경영자율성의 결과라고 하지만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경영진은 물갈이됐고, 일명 ‘먹튀 방지법’까지 나올 지경이니 대가는 혹독했다. 카카오페이 내에서는 카카오라는 사회적 브랜드, 상장사로서의 책임감을 무시한 결과라는 회의론이 나온다고 한다. 카카오페이는 과거 금융소비자보호법 실시를 앞두고 금융 서비스에 제동이 걸린 걸 당일 파악하기도 했는데 성장과 혁신에 집중하느라 대관 역량이나 사회적 여론에 이들이 얼마나 둔감했는지 알 수 있다.

비단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만 겪는 게 아니다. 영국의 대표 핀테크기업 레볼루트 또한 비슷한 일을 겪고 컴플라이언스 인력 등을 대폭 늘렸다. 이 밖에 혁신을 꾀한다며 온라인으로만 받던 고객 서비스도 전화번호를 도입하는 등 은행업계의 전통적 의사결정도 수용하기 시작했다. 레볼루트는 2019년 각국의 감독규제를 살펴보기 위해 글로벌 라이선스팀을 구축하기도 했다.

혁신을 최우선 모토로 삼아온 빅테크들은 벤처에서 출발해 회사를 키워왔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회사가 커가는 데 자양분이 됐다. 이들이 전통 은행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에 메기 역할을 한 것도 맞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금융권에 편입된 이상 규제라는 울타리, 여론이라는 정성적 접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존 은행권의 ‘보신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여온 빅테크들이 최근에 은행권 인력을 영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영향이다. 빅테크업체들은 기존 은행권의 의사결정이나 규제, 사회적 여론을 반영해 의사결정을 하겠다고 반성문을 쓰고 있다. 그간의 실수가 이제는 ‘성장(growth)’을 넘어 ‘성숙(grow up)’을 이루는 계기로 바꾸길 기대해본다.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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