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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위기, 북극곰만의 문제 아닌 경제·일자리 문제” [人터뷰-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
‘기후위기 대응’ 전문가
적극대응 않는 기업에 투자 줄어…
재생에너지 요구 따라 공장 해외로
RE100 충족조건으로 제조업 유치
뒤처지면 결국 우리 일자리 빼앗겨
한국·호주 등 탄소중립 노력 뒤처져
‘수소환원제철공법’ 철강 선점 기회로
어릴 때 본 경주 해안가 원전 각인
한강 거품·구로공단 매연에 환경관심
윤순진 2050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현구 기자

한때 기후위기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북극곰의 이미지로 상징됐다. 녹아내리는 빙하와, 굶주리는 북극곰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은 일부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로 여겨지고 일상과는 당장의 관계가 없는 먼 얘기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어느새 북극곰으로 상징되는 ‘기후위기’는 우리가 일하는 직장의 존립 문제로 성큼 다가왔다. 네이버, KB금융지주 등의 주요 주주인 블랙록도 올해 탈탄소에 부진한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주요주주인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이 이들 회사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기후위기에 대한 노력이 더딘 기업의 주가가 움직이고,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는 현실이 됐다는 얘기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시킨 이후 국무회의에서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의결하는 등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돼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을 이끌고 있는 윤순진 위원장을 만났다.

▶“기후 위기는 경제, 일자리 문제…대응 늦으면 해외로 공장 이전될 것”=서울 종로에 있는 탄소중립위원회 집무실, 윤 위원장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수차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조절했다. 업무 시간 동안 전등을 켜지 않아 커튼만으로 실내 채광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윤 위원장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기후위기가 나의 문제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방치하고 기후위기가 오히려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개개인도 실천에 나서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운전 면허가 있지만 관용차를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종이타월 사용을 자제하라며 직원들에게 손수건을 선물했다.

그는 “기후위기는 더이상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경제의 문제’, ‘일자리의 문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 수 있으며 태양광·바이오 등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이 윤 위원장의 설명이다.

윤 위원장은 애플에 부품을 수출하는 삼성전자를 예로 들었다. 그는 “애플은 자사에 부품을 수출하는 협력업체에 반드시 재생 에너지를 쓰게 요구한다”며 “애플에 부품을 수출하는 삼성이 그 부품을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수 있겠나. 현재 상태가 이어지면 삼성은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해야 된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선진국들이 제조업을 오히려 자기 것으로 가져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때문”이라며 “RE100을 조건으로 내거니까, 그걸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제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뒤처지면 결국 우리는 일자리를 뺏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E100은 2050년까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100% 전력을 사용하겠다는 기업의 선언이다. RE100에 가입한 기업은 총 349곳으로 국내 기업은 SK하이닉스와 LG에너지솔루션, 아모레퍼시픽, 한국수자원공사 등 14곳에 불과하다. 삼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애플은 지난 2016년 RE100을 선언했고, 2020년에는 2030년까지 제조 공급망 및 제품 생애주기 등 기업 활동 전반에서 탄소 중립화 10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반도 100년 전에 비해 1.6도 상승…“일상에도 영향”=기후 변화는 사람들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기상청이 발간한 ‘한반도 109년의 기후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의 여름은 100년전 98일에서 최근 127일로 한 달이 늘어났다. 연평균기온은 과거에 비해 1.6도 상승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은 13일이 빨라졌고, 서울의 벚꽃 평균 개화일도 빨라졌다.

윤 위원장은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다가 사망하는 사람이 과거보다 늘고 있고 건설 노동자들은 여름에 작업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고 했다. 또 “수산업 양식 같은 경우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져서 양식장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닷물 온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잡히는 어종이 달라졌다. 달라진 어종을 잡으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생선 종류 따라 어구, 어망, 어선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시설을 바꿔야 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로 미세먼지의 양에도 변화가 있다. 그는 “기후 변화로 바람의 양이 많이 줄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늘었다”며 “봄비도 과거보다 덜 내리게 됐다. 예전에는 미세먼지가 바람과 비에 씻겨서 내려갔지만, 이제는 그것이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산불이 많이 나서 보험회사에서 보험 가입을 꺼리는 일도 있다”며 기후 변화가 개인의 재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기후 악당에서 기후 대응 선진국 향해…“위기가 기회 될 수도”=한국은 기후위기 대응에 뒤쳐졌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전반적인 평가였다. 국제시민단체인 ‘기후행동추적(CAT, Climate action tracker)’은 2016년 낸 보고서에서 한국을 비롯한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뉴질랜드를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매우 부족 (highly insufficient)’한 나라라고 했다. 영국의 언론 ‘클라이밋 홈’이 해당 보고서를 근거로 4개국을 ‘기후악당’이라고 하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산업이 제조업 중심이지만, 탄소 중립을 위한 노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뒤쳐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 배출과 흡수를 동일하게 해서 순배출량 ‘0’으로 만드는 것이다.

EU는 지난해 7월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입법안을 공개한 바 있다. 이어서 탄소국경조정제가 시행되면 철강 수출 규모가 20% 넘게 줄어들 수 있다는 산업연구원의 전망도 나왔다. 한국은 탄소국경조정세로 철강산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한다.

윤 위원장은 “철강 산업을 포기하고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다고 CO₂ 배출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며 공정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을 예로 들며 “이렇게 되면 우리가 세계 철강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소환원제철 공법은 철강 생산 시 CO₂ 배출을 야기하는 기존의 석탄 및 천연가스 등 탄소계환원제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것이다.

▶고향서 어릴 때 본 원전 모습 각인…결국 환경 전문가로=윤 위원장은 경주에서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강원 속초에서 태어난 윤 위원장에게는 경주가 사실상 고향이다. 부모님과 나들이를 갈 때마다 경주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회색 빌딩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대학 2년생이던 1986년에는 체르노빌 원전 폭파 사고도 있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TV에서는 거품 낀 한강의 모습과 매연이 자욱한 구로공단을 조명하는 뉴스가 쏟아졌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중일 때는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 빈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윤 위원장이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사회 교사가 됐다. 정치·사회를 가르치면서 환경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특별활동반을 만들어 아이들과 환경에 대해 토론했다. 대학교수가 되고 나서는 풀뿌리 시민단체 ‘에너지 전환’을 이끌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에는 서울시 녹색시민위원과 에너지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이사장과,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4년에는 서울시가 시범사업으로 진행한 미니 태양광 패널 2개(각 250와트)를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에너지 문제로 가족들이 피곤해 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에너지 독재자”라고 불린다며 웃으며 답했다. 윤 위원장은 “전기 멀티탭을 끄지 않고 가면 남편이든 딸이든 저한테 혼난다. 전기뿐만 아니라 난방도 웬만큼 춥지 하지 않으면 켜지 않는다”며 “가족들이 이제는 버릇이 돼서, 스스로도 잘 지키게 됐다”고 말했다. 박병국 기자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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