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태형의 현장에서] 희망대출은 ‘희망’인가, ‘희망고문’인가

정부가 가계부채 등 대출시장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자영업자의 신용대출 증가세가 가파르다고 지적하며 금리상승 시 차주의 상환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최근 경제·금융시장전문가 간담회에서 대외충격에 대비해 비은행권 리스크 등에 대한 선제조치를 마련하고 금융권 손실흡수능력이 충분한지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의 인식과 보조를 같이하며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위는 중신용 이상 소기업·소상공인의 피해회복 지원을 위해 총 8조6000억원의 희망대출플러스를 24일부터 신규 공급기로 했다. 이 중 3조8000억원은 중신용 프로그램으로 운용하고, 지역신용보증재단의 특례보증을 통해 운전자금이나 대환자금(개인사업자에 한함)을 지원한다. 제2금융권의 10%대 고금리에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시중은행으로 갈아타기 위한 대환자금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자영업자의 숨통은 틔워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지원 대상에서 국세 및 지방세 체납, 금융기관 연체, 휴·폐업중인 사업체와 보증(지역신보)·대출(은행) 제한업종은 제외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장 주변 식당, 상점의 폐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미 재기의 의지가 꺾인 자영업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 제2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지 않고 정책수단으로 인식하는 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기 어렵다”며 “대출총량 규제나 DSR 적용 등 금융업계에 대한 규제가 결국 금융소비자를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업 전반에 대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소독약만 발라주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고 위원장은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및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오는 3월 종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코로나19 방역 상황, 금융권 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며 연장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수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은 개인사업자로 대출을 받는 것인데, 당장 영업이 안 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빚을 더 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코로나 이후에도 매출증가로 현금창출이 안 되면 대출은 고스란히 개인이 부담이 되고, 특히 폐업이라도 하면 보증이 끊겨 바로 상환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출 만기 연장을 종료했을 때의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금융 당국이 종료시점에 대한 명확한 일정을 밝혀야 한다”며 “상황이 특히 어려운 이들에 대해선 대출이 아니라 소득 지원을 통해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이 금융업은 고사(枯死)하고 자영업자는 빚덩이에 올라앉게 되는 상황이 재연된다면 정부의 대출지원책은 자영업자에게 ‘희망’이 아니라 ‘고문’이다. 나락으로 빠지는 상황에서도 언젠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들게 하는 ‘희망고문’이다.

th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