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눈물의 마스크 벗는 날, 오겠지요?
호랑이해의 첫 포효 “2022, 마스크없는 세상을 위해...”
마스크 입에 달고 태어나는 우리 아이들 “더이상 안돼”
새 소통 익숙해지되, ‘마스크OUT’ 위한 지혜를 모아야
2022 임인년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지난 2년을 돌아보면 마스크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 ‘불편한 친구’였다. 첨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어느새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가 돼버렸다. 코로나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호랑이해에도 마스크는 여전히 우리 삶에서 떠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마스크를 통해 잃은 것도 있지만, 배려나 존중이라는 새로운 소통 방식 등 얻은 것도 많은 게 사실이다. 희망은 절망 속에 꽃 피운다. 마스크 없는 세상을 위해 지혜를 모아가는 동시에 새로 펼쳐지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 안타깝고 슬프지만 2022년에도 진행해야 할 우리의 숙제다. 사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모아 모자이크 형태로 만든 마스크 이미지. 박해묵 기자

지인의 얘기다. 어느날 어린 아들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간단한 옷을 사주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지인은 차를 타자마자 마스크를 벗었는데, 아들은 마스크를 그냥 쓴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란다. 며칠 전 필터 교환을 했기에 차안 공기는 상쾌했다.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마스크 벗어도 돼.” 아들이 빤히 쳐다보더니 그러더란다. “아빠, 괜찮아. 난 마스크가 편해.”

지난 주말 초저녁. 폐지를 버리려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가는데, 공터 한쪽에서 모녀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10m 사이를 두고 마스크를 쓴채 공을 주고받고 있다. 공을 치다가 너무 손에 힘을 주었나, 엄마의 마스크가 벗겨졌다. 딸이 소리친다. “엄마, 빨리 마스크 써. 사람이 지나가잖아.”

코로나시대, 최소한 지난 2년동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마스크 풍경’이다. 마스크? 첨엔 어색했다. 어떤 이는 갑갑하다며 턱마스크로 대충 시늉만 했고, 어떤 이는 콧구멍에 끼어진 코뚜레 같다고 기겁하며 한사코 거부했다. 하지만 다들 어느새 마스크에 익숙해졌고, 마스크는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상징물처럼 됐다. 마스크가 우리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가 돼버린 것이다.

슬픈 일은 맞다. 맑은 하늘아래 하마 입처럼 크게 벌리고 맘껏 공기를 마시던 시절,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침이 튀도록 수다를 떨고 이를 활짝 드러내며 껄껄껄 웃던 시절은 갔다. 중장년층이야 그렇다고 해도,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를 써야 하는 우리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는 것일까. 출생부터 어쩌면 늙을 때까지 마스크를 써야 하는, 그것도 마스크 착용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우리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은 큰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관련기사 2·3·4·5·6면

2022년 임인년(壬寅年), 포효하는 검은 호랑이해에도 마스크는 우리 일상에서 계속 ‘불편한 친구’로 존재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제아무리 무서운 호랑이가 겁박해도 코로나는 영 물러날 뜻이 없는 기색이다. 아니, 코로나가 종식돼도 마스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마스크 지배력이 그만큼 공고하다는 뜻이다. 혹자는 그래서 ‘위드코로나’는 곧 ‘위드마스크’요, ‘엔드(End)코로나’ 역시 ‘위드마스크’라고 말한다.

영어의 마스크(Mask). 우리말로 하면 ‘가면(假面)’이다. 얼굴에 가면을 쓰다니.... 어휘 자체는 일단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마스크의 이미지는 좋지는 않다. 강인욱 교수(경희대 사학과)는 이런 견해를 내놓는다. “코로나 이전의 마스크 이미지는 동서양에선 한마디로 ‘나약함’과 ‘범죄’로 요약할 수 있어요.” 동양에선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이 착용하는 도구, 서양에선 범죄자가 자신을 감추기 위해 활용하는 도구로 인식돼 왔다는 것이다.

마스크가 폄훼의 대상만 된 것은 아니다. 우리 전통 광대놀이의 가면(마스크)엔 풍자가 있었고, 국보급 하회탈엔 해학과 웃음이 넘쳐난다. 마스크가 그동안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마스크가 좋든, 싫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마스크를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 앞에선 더욱 그렇다. 선택이 아닌 강요 앞에서 적지않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바로 마스크다.

코로나는 언제쯤 종식될까. 아니, 종식될 수는 있을까. 백신을 서두르는 다국적 제약사, 공신력있는 글로벌 코로나연구소조차 전망이 다르다. 어느 곳은 코로나가 2022년 종식될 것이라고 하고, 어떤 곳은 2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어떤 곳은 변이가 계속되는 한 코로나는 영원할 것이라고 한다. 마스크에 관한한 중차대한 문제는 인간면역력이 극대화돼 코로나가 극복되든, 백신 개발로 코로나 아웃(Out)이 실현되든, 자연적으로 코로나가 소멸되든 간에 일상을 파고든 마스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라는 것이다. 결국 코로나 여부와 상관없이 마스크를 마냥 안고 살 수도, 마냥 벗고 살 수도 없는 상황에 왔다는 것이다.

임명호 교수(단국대 심리학과)는 이를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에 빗댄다. 얼어죽을까봐 고슴도치들은 서로 껴안아야 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가시에 찔려 아프고, 멀리 떨어지면 추워 죽을 상황이 오늘날 ‘마스크와 인간’ 관계라는 것이다.

이런 마스크에는 긍정과 부정이 나뉜다. 임 교수는 “마스크는 외로움과 우울감 측면에선 분명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서도 “그렇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공고해진 사회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정우 교수(성균관대 사회학과)는 “마스크를 잘 착용해서 시민들 사이에 서로 배려해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시각이 있고, 마스크가 오히려 사람들 간의 벽을 세우고 개인주의를 강화하고 각자도생 분위기를 공고화시켰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마스크의 사회적 효과는 둘째치고, 우리의 관심은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가 하는 점에 있을 것이다. 구 교수는 “코로나에 대한 경험이 워낙 강해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헬스장이나 공공장소에선 마스크를 쓰는 이들이 여전히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감염예방 차원 외에도 코로나시대 습관화된 경험이 마스크 착용을 버릴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새해는 호랑이 해다. 호랑이가 어디 그냥 호랑이인가. 어렸을 적 아이들이 울 때마다 우리 할머니들은 말씀하셨다. “쉿, 호랭이 올라.” 그러면 울음을 싹 그쳤다. 아무리 아기라도 해도 호랑이의 무서움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2022년, 용맹함의 상징 호랑이의 우렁찬 울부짖음을 듣고 코로나가 화들짝 놀라 멀리멀리 도망갔으면 좋겠다고 다들 소망할 것이다. 이왕 도망갈 바엔 마스크를 들고 꽁무니 뺐으면 한다.

하지만 우는 아이 울음을 딱 멈추게 하는 호랑이라도 현재로선 코로나를 물리칠 힘은 없어 보인다. 우리 할머니들은 무서운 호랑이를 상대할 천적으로 ‘곶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세상 겁없이 날뛰는 코로나를 단칼에 제압하고 마스크를 지구밖으로 추방할 ‘비책’은 무엇일까. 최소한 우리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마스크를 입에 달고 태어나게 할 순 없지 않은가.

헤럴드경제는 2022 신년기획으로 ‘마스크’를 화두로 삼았다. 마스크에 대한 모든 것이다. 마스크에 대한 역사와 철학, 경제 그리고 기술의 진화를 담았다. 마스크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동안 알았던 것을 펼쳐놓은 것이지만 추구하는 메시지는 ‘마스크여, 안녕’이다. 마스크, 언젠가 널 꼭 벗고 말테다. 모두의 바람을 대변한다. 마스크 없는 세상, 다음세대(Next Generation)를 위해....

에코팀=김상수·최준선 기자

dlcw@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