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이 15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주독 러시아 외교관 2명 추방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독일이 2019년 베를린 도심 한복판서 발생한 체첸인 살해사건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 러시아 외교관 2명을 추방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더해 이번 일로 독일과 러시아 간의 긴장관계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도이체벨레(DW)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 고등법원은 2019년 8월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티어가르텐에서 체첸 출신 반러인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러시아 국적 남성(56)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맞춰 독일 정부는 독일 주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며, 러시아 대사를 초치하고 대사관 소속 외교관 2명을 추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그가 러시아의 지시를 받고 행동한 게 명백하다고 간주했다.

올라프 아르놀디 국가안보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는 “해당 행위는 순전히 복수 차원에서 이뤄졌다”면서 “국가 주도의 테러리즘”이라고 선고이유를 설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러시아 남성은 여행객 행세를 하며 독일에 입국해 2019년 8월 23일 티어가르텐 주차장에서 2차 체첸 전쟁 당시 민병대에서 러시아에 맞서 싸움을 이끌었던 조지아인(40)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접근해 뒤에서 피해자의 등과 머리에 세 발의 총격을 가했다.

러시아는 이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범행 한 달 전 가짜 신분의 공식 여권을 발급해줬다. 또한 범행 이후 러시아 측은 관여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해당 신분이 맞다고 우겼다.

피해자는 2016년 말부터 망명신청자로 독일에 머물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피해자를 "악당", "살인자", "피에 굶주린 자"라고 부르는 등 러시아의 주목을 받던 인물이다.

독일 외교부는 판결 직후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소속 외교관 2명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인물)'로 지정했다. 파견국은 외교적 기피인물이라는 통고를 받으면 해당 외교관을 소환하거나 외교관직을 박탈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세르게이 네차예프 주독러시아 대사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이미 어려운 러시아-독일 관계를 심각하게 악화하는 편향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이라며 "러시아 당국이 살해를 지시했다는 판단은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반러시아 정서가 재판 내내 강요됐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