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뭐래?] 현관 앞 ‘비닐 산’이 생겼네

현관 앞에 비닐 산이 쌓였다.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 처음부터 모으려고 한 건 아니다. 두 달 전 주택가로 이사 온 후 분리배출이 체계화돼 있는 아파트와 달리, 주택가는 일단 난감하다. 주민끼리 암묵적 동의한 배출지엔 비닐 배출이 없던 터, 그렇게 모은 비닐이 어느덧 2개월째. 구청에 확인한 결과, 특정 요일에 배출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았다. 이젠 비닐로 점령당한 현관의 주인을 되찾을 때다. 비닐, 이젠 안녕.

뭐래?

비닐은 재활용업체엔 그리 인기 있는 품목이 아니다. 재활용업체도 결국 수익구조에 따라 움직이는데 폐지나 의류, 고철 등과 달리 폐비닐은, 소위 돈이 되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재활용업체도 돈 되는 재활용품에 폐비닐을 더해 가져가는 구조다.

게다가 비닐 소비량은 급증하는 추세다. 2019년 상반기 대비 1년 사이 하루 발생량은 11.1% 늘었다. 951t. 하루에 거의 1000t씩 쏟아지는 셈이다. 인기도 없고 사용량은 늘고 있으니 언제든 2018년의 ‘폐비닐대란’이 반복될 위험도 크다.

[지구, 뭐래?] 현관 앞 ‘비닐 산’이 생겼네

통상 비닐을 플라스틱과 별개로 여기지만 비닐 역시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그래서 비닐에도 플라스틱 재질을 표시하는 마크가 적혀 있다. PP(폴리프로필렌) PVC(폴리염화비닐) OTHER(기타) 등이다. ‘OTHER’는 한 가지가 아닌 다수의 재질이 섞여 있는 경우인데, 통상 비닐은 복합 재질이 많아 ‘OTHER’ 표기가 많다.

수거된 비닐은 코르크 형태로 변형해 화력발전소 등의 연료(고형 폐기물 연료·SRF)로 주로 쓰이며, 일부는 녹여 플라스틱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뭘해?

기초는 파악했으니, 이젠 비닐을 처리해볼 때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등이 운영하는 앱 ‘내 손안의 분리배출’엔 품목별 요령이 잘 정리돼 있다.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구는 등 이물질을 제거합니다.흩날리지 않도록 봉투에 담아 배출합니다. *참고, 뽁뽁이(버블랩)도 비닐로 버리시면 됩니다. ”

내 손안의 분리배출 앱, 비닐류

‘쓰레기박사’로 유명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비닐은 표시 여부와 상관없이 같이 묶어 배출하면 돼요. 다만, 업소용 랩 등 PVC 재질은 섞이면 안 됩니다. 태울 때 염화수소 가스가 발생해 기계를 망가뜨리죠. 라면수프가 담긴 봉지도 소금에 염소 성분이 있어 씻기 어렵다면 그냥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합니다. ”

홍수열 소장 저서,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중

한 가지 더, 수거된 비닐은 선별장을 거치는데 육안으로 쉽게 상태를 확인하지 못하면 수작업 선별 과정에서 탈락하기 쉽다. 그러니 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분리 배출할 것!

요약하자면 ▷깨끗한 상태로 모은다(어려우면 종량제로) ▷스티커 등 부착물은 제거 ▷분리배출 마크를 확인 ▷투명한 비닐에 모아 버리기

[지구, 뭐래?] 현관 앞 ‘비닐 산’이 생겼네

비닐을 직접 모아 분류해보니 자괴감부터 든다. 뽁뽁이는 왜 그리 많은지, XX토피아는 또 왜 그리 많이 갔는지….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서 ‘절제가 미덕’인 시대로, 이제야 반성해본다.

그 결과, 비닐 산은 이렇게 해체됐다. 오염된 비닐은 종량제 봉투로, 투명한 비닐은 투명한 비닐대로, 유색 비닐은 투명한 비닐봉지 속에, 그리고 묶어서 마무리.

[지구, 뭐래?] 현관 앞 ‘비닐 산’이 생겼네

분리배출법보다 중요한 건 쓰레기를 줄이는 것. 택배 하나에도 고민하고, 장바구니를 들며, 불필요한 포장은 거절하기. 반성이 앞서는 체험기다.

지구, 뭐래? 소소한 얘기
생분해 비닐,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판매되는 제품들이 있다. 플라스틱 제품군 중 가장 먼저 생분해가 실험적으로 적용되는 분야가 비닐이다. 하지만 현재 시판 중인 이 제품군이 실제 땅에서 썩으려면 미생물과 고온이란 특수 환경하에서만 가능하다. 현재 대부분 매립지와는 거리가 멀다. 국내 화학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땅에서 썩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생분해는 상용화까지 향후 2년 안팎 걸릴 것으로 추산한다. 생분해라도 가장 중요한 건 안 쓰는, 덜 쓰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과 비대면 여파로 택배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면서 느는 게 완충재(뽁뽁이)다. 요즘은 재생종이로 대체하거나 폐목재를 활용한 우드초핑을 활용하기도 한다.

[지구, 뭐래?] 하수구에 꼭 있는 '이것', 내 입으로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