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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무역 체제의 상징 WTO…G2 패권경쟁에 ‘헛바퀴’ [헤럴드 뷰-中 WTO 가입 20년 명암]
선진국들의 거센 WTO 개혁론
美 중심 선진국 vs 中 중심 개도국
분쟁 심판·개도국 우대 놓고 무한대립
비토권 지닌 미-중 대결에 합의제 무력
개혁에 대한 관심 하락이 근본적 문제
각국 WTO 대신 비정형적 방식에 의존
확고한 리더십 부재도 개혁에 걸림돌

1995년 출범 이후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의 상징으로서 글로벌 경제성장을 이끌던 세계무역기구(WTO)가 ‘주요 2개국(G2)’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경쟁 앞에 사실상 무력화 수순을 밟고 있다.

서방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난 20년간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무기력하게 당했던 현행 WTO 체제를 개혁, 위반 시 효과적으로 철퇴를 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대표 국가를 자처하는 중국이 서방 주도의 개혁에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WTO가 공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선도 나오는 모양새다.

▶분쟁 심판·개도국 우대 등 놓고 첨예한 대립=WTO 개혁론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곳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 그룹이다. 이 3개국 통상장관들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상회의를 통해 ‘공정한 규칙’에 기반해 WTO를 개혁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했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경제산업상, 발디스 도브로우스키스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공동 성명을 통해 “제3국의 비시장정책과 관행이 우리의 노동자와 비즈니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약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3국 통상장관들은 공동 성명에서 중국이라고 직접 특정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시급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되는 분야는 무역분쟁 심판 부문이다.

선진국의 가장 큰 불만은 지난 20년간 중국이 자국 기업을 육성한다는 명목하에 무차별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해외 제품에 대한 일방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등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물론, 일방적 무역 보복 조치 등 규칙 교란행동에 WTO가 효과적으로 제재할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당장 미국은 2019년 WTO 상소기구 후임 인선을 발표하지 않음으로써 업무 기능을 사실상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서방국을 중심으로 상소기구를 폐지하고 패널심만 있는 ‘단심제’ 도입을 개혁방안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현행 제도에서 상대적 이익을 보고 있는 중국의 반발이 예고된 상황이다.

WTO 내 개발도상국(개도국) 우대 조항에 대한 국가별 이견도 WTO 개혁을 위해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선진국들은 개도국 지정 조건을 ‘스스로의 선언’에 의존하는 현재 방법 대신, 일정 수준 이상으로 경제가 성장한 개도국은 선진국으로 편입되는 ‘졸업’ 방식을 도입하자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안이 도입될 경우 1순위로 선진국에 편입돼 개도국에 주어지던 혜택을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중국이 벌써부터 반발하는 모양새다.

미레야 솔리스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장은 “전체 회원국의 동의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이 진행되는 WTO의 구조상 개혁 진행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며 “특히 비토(veto·거부)권을 지닌 미-중 간 대결이 첨예한 상황에 합의는 그만큼 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WTO서 마음 떠난 주요국들…개혁동력에 물음표=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회원국들이 WTO를 자국의 무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답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국제무대에 ‘미국이 돌아왔다’고 큰소리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WTO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는 돌아오지 않았다”며 “WTO 탈퇴까지 공언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비해선 유화적이지만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이 바뀐 것뿐”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은 앞에서는 EU 등과 함께 WTO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뒤에선 동맹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더 몰두하며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 서구 국가들조차 자유무역 질서를 교란한다고 중국 등 개도국을 비판했던 주요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이다.

솔리스 센터장은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무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WTO 내 체계화된 제도를 통하기보다는 국가 간 협상이나 자국의 관세정책 등 비정형적 방식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WTO 내 리더십이 실종된 것도 개혁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2차 각료회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새 변이 ‘오미크론’ 탓에 연기됐다. 이로써 제11차 회의가 열린 2017년 이후 4년째 WTO 개혁을 논의할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각료회의가 열리지 못하게 됐다. 특히 지난 3월 선출된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이 첫 무대에 데뷔조차 못하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WTO의 힘을 한데 모으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폴리티코는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임기 초반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전임 의장이란 이력을 살려 선진국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도국에 원활히 보내는 데는 큰 공헌을 했다”면서 “WTO 개혁을 위해 162개 회원국, 특히 미-중 사이의 이견을 불만 없이 담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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