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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시골 사는 맛, 농사짓는 맛

지난주에 올해 농사의 마지막 수확작물인 돼지감자(뚱딴지)를 캤다. 며칠에 걸쳐 가족이 총출동해 캐고 씻고 말리는 작업을 함께했다.

연례행사인 김장 또한 마찬가지. 두 딸이 힘을 보태니 일처리가 한결 수월하다. ‘가족의 힘’은 단순한 숫자 더하기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돈독해지는 가족애야말로 보이지 않는 최고의 수확이요, 기쁨이리니.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아내와 수확작물에 대한 평가를 했다. 해마다 옥수수·감자·고구마 등 식량작물을 비롯해 수박·참외·오이·호박 등 박과류, 고추·마늘 등 양념류, (양)배추와 무 등 다양한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한다. 아내가 올해 가장 만족스러워한 작물은 고추다. 비록 탄저병을 비껴가진 못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필자가 꼽는 올해 농사의 하이라이트는 수박이다. 올 봄에 모종 80개를 심었는데 제법 큰 수박을 약 90개 거뒀다. 무게가 13kg 안팎의 ‘대물’도 여러 개 나왔다. 이후‘끝물 이삭줍기’로 작은 것 30여개를 더 얻었다. “이런 맛은 처음”이라는 아내의 감탄사도 함께....

한여름에 가족 모두가 시원하고 달달한 수박을 정말 원 없이 먹었다. 주변에 인심도 썼다. 나머지는 즙을 짜서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 보관했다. 비닐 한 봉지에 제법 큰 수박 한 통이 다 들어간다. 여름 수확 때 약 60봉지의 수박즙을 만들어 놓고선 가을엔 물론이고 겨울인 지금도 마신다. 내년봄까지도 충분히 즐길 것 같다.

게으른 농부라 작물 수확은 모두 마쳤지만 농사 뒷정리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고추지지대도 뽑아야 하고, 풀 억제 및 보습을 위해 땅에 씌워놓은 제초 매트와 검정비닐도 계속 걷어내야 한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말라버린 오이와 호박덩굴이 그대로 매달려 있다. 할 일은 여전히 태산이다.

농한기 겨울이라 시간은 넉넉하다. 다만 강원도의 겨울은 매섭기 때문에 가급적 해가 있는 낮에 작업을 해야 한다. 제초 매트와 검정비닐을 걷어낼 때는 먼지가 풀풀 날린다. 이미 누렇게 변했어도 질기고 억센 풀은 제초 매트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다. 손으로 힘껏 잡아채면 포장테이프를 뜯어내는 것처럼 “찌이익” 소리를 지르며 끝까지 저항한다. 죽은 풀과의 전쟁 또한 만만찮다는 것을 늘 실감한다.

추운 날씨에도 한바탕 일을 하고 나면 온몸에서 땀이 난다. 집으로 들어와 샤워 후 받아드는 소박한 저녁상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겨울이라도 각종 수확물이 쌓여 있는 농부의 창고는 넉넉하다. 따자마자 바로 쪄서 냉동시켜 놓은 유기농 옥수수를 해동해 주식 또는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 고구마와 감자도 빼놓을 수 없다. 아침에는 따뜻한 호박즙을, 일을 마친 후엔 수박주스를 마신다. 때때로 돼지감자차도 곁들인다. 각종 묵나물은 겨우내 입맛을 돋워준다.

‘음식이 곧 보약’이라고 했다. 유기농으로 지어 자연의 맛, 자생력의 맛을 간직한 각종 먹거리는 먹어서 배부를 뿐 아니라 건강까지 선물한다. 면역력 증진 등 약성이 뛰어나기에 ‘치유의’ 먹거리다. 겨울에도 즐겨 먹는 따끈한 옥수수와 시원하고 달달한 수박주스는 그 맛이 더욱 각별하다.

“이 맛에 농사짓는 거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시골살이의 행복이란 결국 단순함과 소박함, 그리고 감사함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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