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2021 상금왕-올해의 선수 오른 ‘고진영의 힘’
LPGA투어 최종전 우승에 웃음꽃
손목통증에도 4R 생애 첫 63타
“코다보다 내가 좀더 운 좋았다”
올림픽 노메달 뒤 승부사 본능
고진영이 22일(한국시간) LPGA 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후 두팔을 번쩍 들고 기뻐하고 있다. [AP]

“완벽한 ‘고진영 쇼’였다. 이럴 땐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넬리 코다)

63개홀 연속 그린적중률 100%. 대회 첫날 9번홀부터 마지막날 18번홀까지 핀을 향해 쏜 모든 샷이 인공지능(AI)처럼 정확히 그린에 안착했다는 의미다. 외신들은 “입이 떡 벌어지는 플레이”라고 했고, 최대 라이벌은 “경이로운 골프를 했다. 이럴 땐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고진영(26)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21시즌 최종전서 2년 연속 정상에 오르며 올해의 선수와 상금왕을 휩쓸었다. LPGA 투어 상금왕 3연패와 올해의 선수 2회 수상은 ‘골프여왕’ 박세리와 박인비도 이뤄내지 못한 한국인 최초의 금자탑이다.

고진영은 2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LPGA 투어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총상금 500만 달러)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만 9개를 몰아치며 9타를 줄여 최종합계 23언더파 265타를 기록, 2위 하타오카 나사(일본)를 1타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대회 2연패를 달성하며 올시즌 5승, 통산 12승을 기록했다.

여자골프 역대 최고액 우승상금인 150만달러를 품은 고진영은 시즌 상금 350만 2161달러로 3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상금왕 3연패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이후 LPGA 투어에서 13년 만에 나왔다. 또 시즌 상금 300만 달러 돌파는 2007년 오초아의 436만 달러 이후 14년 만이다.

상금 뿐 아니라 올해의 선수(211점)도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미국)를 제치고 2년 만에 트로피를 가져왔다. 한 해 성적을 포인트로 환산한 CME 글로브 레이스 역시 고진영이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시즌 5승은 고진영 개인으로도 최초 기록이며 투어에선 2016년 에리야 쭈타누깐(태국) 이후 5년만이다. 세계랭킹에서도 1위 코다를 추월하거나 격차를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끝판왕다운 압도적인 마무리였다. 코다, 하타오카, 셀린 부티에(프랑스)와 함께 공동 선두로 최종라운드를 출발한 고진영은 초반부터 맹렬한 기세로 6번 홀(파5)까지 버디 4개를 휩쓸며 단독선두로 뛰쳐나갔다. 전반에만 6타를 줄인 고진영은 후반서도 버디 행진을 멈추지 않으며 경쟁자들의 힘을 뺐다.

고진영은 1라운드 9번 홀 이후 63개 홀 연속 그린을 놓치지 않는 완벽한 샷 감각을 뽐냈다. 2∼4라운드 그린 적중률 100%에 페어웨이 안착률도 대회 내내 91.1%나 됐다.

고진영의 2021년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올해 초 자신을 끔찍이 아꼈던 할머니의 임종을 하지 못하고 시즌 전반기엔 우승 소식도 전하지 못하면서 깊은 침묵에 빠졌다. 스스로도 “골프 사춘기를 겪는 듯하다”며 답답해 했다.

7월 VOA 클래식에서 시즌 첫승을 신고했지만 세계랭킹 1위를 코다에 뺏기고 고대했던 도쿄올림픽서 노메달(공동 9위)에 그쳤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기 승부사의 본능이 깨어났다.

도쿄올림픽을 즈음해 1년 만에 다시 고진영의 스윙코치를 맡은 이시우 코치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올림픽 후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30일간 매일 연습장에서 만났다. 고진영을 오래 봐왔지만 그렇게 열심히 연습한 걸 보지 못했을 정도였다”며 “도쿄올림픽 후 본인의 느낌을 찾은 것같았다. 골프가 너무 재미있다며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라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훈련 효과가 두세배로 크게 높아졌다”고 했다.

이 코치는 “고진영은 본인이 원하는 샷을 만들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이다. 예를 들어 하이드로 구질을 연습하는데 스트레이트나 페이드로 바뀌면 그걸 만들기 위해 하루를 다 쏟아붓는다. 그런 점이 다른 선수와 다르다”며 “손목 움직임을 줄이고 몸통 회전을 위주로 샷을 교정하면서 아이언샷 정확도가 높아지고 드라이버 거리도 6~7야드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복귀한 LPGA 무대서 고진영은 다른 차원의 선수가 됐다. 9월 캄비아 포틀랜드 클래식 우승을 시작으로 7개 대회서 우승 4회, 준우승 1회, 공동 6위 2회. 코다의 말대로 경쟁자들은 고진영의 원맨쇼를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고진영은 우승 후 “시즌 초반 슬럼프 때는 다시 우승할 수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5번이나 우승해 2019년보다 더 기쁜 것 같다. 손목 통증으로 이번 주 거의 연습을 못했는데 생각보다 샷이 똑바로 나갔고 퍼트도 잘 됐다”고 했다.

이어 “63타는 한번도 해보지 못한 베스트 스코어다. 10년 전에 기록한 64타가 최고였다”며 “코다도 올해 도쿄올림픽 금메달, 메이저 우승으로 잘했는데 내가 좀더 운이 좋았다. 도쿄올림픽이 너무 아쉽다. 다시 도쿄로 돌아가고 싶다”고 웃었다. 모든 걸 다 갖고도 여전히 배고픈 고진영이 2022년엔 또 어떤 드라마를 만들지 기대된다.

조범자 기자

anju1015@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