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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사색] 다이어트 강박증

성인이 된 이후 단 한 번도 가볍게 살아보지 못했다고 속상해하는 어떤 여인이 있다. 뼈대 세고 무게 있는 집안의 딸이라 타고난 유전자가 묵직한지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하라’ 따위의 배부른 조언에 흔들림 없이 다이어트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각종 유행 다이어트를 몸으로 다 실천해본 이 여인. 지속적 노력에도 우상향하는 체중에 좌절하지 않고 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나름대로 연구하고 실천한다. 이쁜 옷 입고 싶은 욕망을 버린 나이에도 이런 노력을 멈출 수 없었다.

언론에 등장하는 의사들이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수시로 겁을 주고 날씬하고 예쁜 여자들은 엄청난 먹방을 소화하며 약을 올린다. 큰맘 먹고 간 헬스장에선 왜 왔나 싶은 인간들이 러닝머신을 차지하고 있다. 할 수 없이 떠밀려간 산책로는 낯설기 짝이 없다.

건강검진 결과지에 ‘혈압관리 요망’ ‘체중감량 필요’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수치 관리 필요’라고 적히기 시작한 지 오래다. 다이어트와 요요 사이를 오가며 결국은 숨 가쁜 뱃살로 남은 여인. 그나마 친구를 만나는 일은 포기하지 못할 즐거움이다. 잘난 척인지, 푸념인지 모를 친구들의 하소연에 적당히 장단쳐주며 질투와 안도의 시간을 갖는 게 정신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뱃살혐오 모임인 듯 난리 치다가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새로운 다이어트 유행을 공유한다. 유튜브를 알려주고 블로그를 포스팅하고 카카오 선물하기로 책도 보내주며 이번엔 어렵지 않은 방법이라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한껏 부푼 기대감을 표한다. 실제로 많은 위안이 된다. 문제를 해결할 완전 새로운 방법을 찾았으니 불편함이 조금 누그러진다. 끝없는 전쟁에서 또 하나의 희망을 본 것이다.

굶을 수 없는 여인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간다. 메뉴는 건강한 단백질에 신선한 채소를 곁들인 보쌈이다. 채소와 삶은 고기의 환상적인 궁합을 거론하며 “탄수화물만 피하면 괜찮다”고 ‘저탄고지론자’가 일행을 안심시킨다. 누군가는 “맛있게 먹으면 안 찐다”고 왕성한 입맛을 위한 변명도 슬쩍 덧붙인다. 종업원 눈치를 봐가며 셋이서 ‘소(小)’자를 시킨다. 고기 한 점으로 끝낼 것처럼 이것저것 올려 커다란 쌈을 만든다. 한 친구가 자기는 맹숭맹숭해서 안 되겠다며 적을 불러들인다. 소주가 왔다.

이성의 영역에선 머릿속에 가득했던 다이어트 고민이 음식 냄새를 맡는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진다. 두 점째부터는 눈치도 안 본다. ‘저주받은 식욕’ 운운하던 우울증에 가까운 자책도 사라졌다. 일단 맛있고 행복하다. 엔도르핀이 팍팍 솟는다.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에 음식만 보면 솟아오르는 식욕, 악마 같다. 가고 싶은 방향은 있지만 과정은 길고 힘들다. 목표가 멀다 보니 이런저런 유혹이 많다. “그냥 살아. 그런다고 살 안 빠져. 요요현상 와서 조금 빼고 더 많이 찌는 악순환에 빠진다니까.” 집안의 식단을 책임진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면 온 식구가 불편한 모양이다.

그럴 때 통계학의 위로가 찾아온다. 마른 사람보다 적당히 살찐 사람이 훨씬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눈앞이 번쩍이며 비만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지워버렸다. 그래, 이 모든 게 궁극적으로는 건강하게 살기 위함이 아닌가. 자신을 들볶으며 사는 건 불행이야. 갑자기 식탁이 풍성해진다.

불편한 선택을 끊임없이 하고 지키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 여인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sunny0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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