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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인간 대포통장]
인간 대포통장 〈1부 - 만들어진 공범〉 ③
박희정(53·가명) 씨, 보이스피싱 피의자 김진석(22·가명) 母의 기억

박희정(53·가명) 씨와 8~9월 2차례에 걸쳐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금수거책으로 기소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된 김진석(가명) 씨의 어머니다. [박준규 기자]

“엄마, 알바 잡았어!”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며 안방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며칠 전 입대를 앞두고 게임만 하는 아들이 답답해 “군대 가기 전에 사회 경험이라도 쌓아라”라며 윽박질렀던 터였다.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하늘의 별 따기”라며 입을 비쭉거렸다. 작년 초만 해도 코로나 확산 초기였기에 구직 사이트에 올라오는 공고는 지게차 운전, 냉동창고 작업 등이 전부인지라 선택지가 없었다.

아들이 구했다는 일은 “대금을 회수하는 대부업체 사무직”이라고 했다. 대부업이라니…. 영화 속 깡패가 떠올라 아들의 등짝을 후려치곤 “그런 거 하다 칼빵 맞는다”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들은 “세상에 편한 일이 어디 있냐”며 맞받았다. 며칠 후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면서 새벽부터 일을 나갔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로부터 2주 후. 아들이 목걸이를 건넸다. “엄마 생일선물로 금붙이 사줘”라며 장난삼아 던진 말을 기억한 것이었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녀석, 알바비 얼마나 된다고….’ 아들은 찔리는 듯 “사실 호기심에 대부업체 일을 시작했다”고 실토했다. 이번에도 “미쳤냐”며 소리쳤다. 목걸이는 환불했다. “일주일 내로 그만두겠다”는 아들의 약속을 받고서야 놓아줬다.

유난히 아들 걱정이 많았다. 여리고 상처가 많은 아이였다. 살집이 있고 눈이 작아서 별명이 ‘100㎏ 아메바’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겉돌더니 친구들의 표적이 됐다. 체육시간에 자리를 비우면 교복이 없어졌다. 머리에 돌을 맞기도 했다. 맞고 들어오는 아들을 볼 때마다 말도 못 할 정도로 괴로웠다. 아이를 대안학교로 전학 보낸 후에도 신경 쓰였다. 그래서 버릇처럼 딸에게 “엄마 죽으면 오빠가 사기당하지 않게 잘 챙겨 줘라”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된 것 같다.

박희정(53·가명) 씨와 8~9월 2차례에 걸쳐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금수거책으로 기소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된 김진석(가명) 씨의 어머니다. [박준규 기자]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전락…아들은 ‘도구’였다

올해 초였다. 겨우 전셋집 계약을 마친 뒤 들뜬 기분으로 학창시절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늦은 밤 전화벨이 울렸다. “○○경찰서인데요, 아드님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습니다”라고 했다. “선생님, 잘못 거신 거 아녜요?”라며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경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해 전화를 탁 끊었다. 이상하게 불안감이 밀려왔다. 걸려 온 번호를 검색해보니 경찰서가 틀림없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다음날 새벽같이 경찰서로 향했다. 유치장 너머 아들은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죽어도 울지 않던 아이였다. “정말 몰랐어. 몰랐어. 미안해.” 아들이 바닥을 보며 웅얼거렸다. 묻고 싶은 건 많은데 가시덤불이 들어찬 듯 목이 메었다. “뭔가 잘못된 거야…. 엄마가 꺼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은 단순 채권 추심업무로만 알았지만 사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로부터 피해금을 수거해 무통장 송금하는 일이었다. [최재원 사진작가]

경찰은 아들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라고 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본 구직 사이트에는 ‘대부업체 채권 추심팀의 수금업무’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상호와 도장이 찍힌 서류도 확인했다. 그들은 “부실 채권을 회수하는 일”이라며 “고객을 만나 현금을 받고 지정된 계좌로 입금하면 된다”고 했다. 고액을 다루는 일이기에 신분증·주민등록초본 등도 보내라고 했다. 의례적인 취업 절차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들을 전국에 보냈다. 약속장소에 가면 고객들이 먼저 아들을 알아보곤 현금다발을 손에 쥐여줬다. 고객들은 그들의 지시에 따라 전화를 하며 한순간도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아들과 말 섞을 틈조차 없었다. 아들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신용보증협력서·대출금상환확인서 등 미리 받은 서류를 건넸다. 일종의 ‘영수증’이었다. 그러고는 은행 ATM으로 이동해 무통장 입금을 했다. 현금이 구겨져 입금이 잘되지 않으면 직접 은행 직원에게 문의해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들은 “꾸물거리면 고객들의 이자가 늘어난다”며 아들을 재촉했다. 하루에 두 탕, 세 탕도 뛰었다. 처음엔 일급, 나중엔 수수료를 수당으로 받았다. 1월 초부터 열흘 사이에 10명이 넘는 고객을 만났다. 아들은 정상적인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했기에 곳곳에 자취를 남겼다. 자신의 카드로 여러 번 택시비를 결제하고 코로나 명부에 실명과 번호를 남겼다. 범죄라고 생각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현금수거책으로 보이스피싱 피의자 된 아들 김진석 씨. 그는 현재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박준규 기자]
‘피의자’란 이름을 한 ‘피해자’

아들이 붙잡힌 건 강원도의 한 은행이었다. 받은 돈을 무통장 입금하고 있었다. 마침 출금하러 온 경찰이 이상히 여겨 “혹시 보이스피싱 피해자냐”고 물었다. 아들은 “대금업체 수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 자리에서 영문도 모른 채 긴급 체포됐다. 지역신문에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라는 기사가 났다. 회사와 상사의 이름, 영수증으로 건넸던 서류, 모든 것이 가짜였다. 피해금액 수억원을 전달받은 보이스피싱 총책은 이미 잠적한 뒤였다.

경찰은 아들이 ‘보이스피싱 공범’이라고 했다. 아들도 가짜 취업정보에 속아서 당한 거라고 해도 듣질 않았다. 다행히 구속되지는 않았다. 인터넷을 뒤지니 아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취준생·직장인·자영업자…. 생계 전선에 뛰어든 평범한 사람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 재판에 올랐다. 보이스피싱 총책은 중국에 있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 같은 피의자들은 총책이 가로챈 피해금액을 합의금으로 물어주고도 실형을 산다고 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아들을 붙잡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빌었다. ‘일을 하라고 보채지만 않았어도….’ 아들의 앞길을 망쳤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어 수면제를 여러 알 삼키기까지 했다. 극단적인 선택만 두 번. 한 달 사이 12㎏이 빠져 앙상해졌다. 잘 들리지도 않고, 또렷이 보이지도 않았다. 갑자기 공황 발작이 와서 36시간 동안 고장 난 경운기처럼 온몸을 떨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딸은 얼굴이 흙빛이 돼 방문을 걸어 잠갔다.

[123rf]

“엄마, 나 감방 갈게. 이제는 노력하지 마. 그러면 되잖아.”

아들은 그만 포기하자고 한다. 종일 식물인간처럼 침대 위에서 숨만 쉰다. 정신과를 찾은 아들은 ‘우울증, 공황장애, 성격 신경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루에 약을 수알 삼키지만 ‘살아 있는 악몽’은 끝날 줄 모른다. ‘복학 후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버렸다. 이따금 “교도소에 5년씩 가느니 차라리 죽어 버릴까”라고 하다가도 “마음을 비웠다”며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다. “교도소 갔다 와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다독이지만 마음에 없는 소리다.

아들은 11월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아들을 8개 혐의로 기소했다. 사기·공문서 위조·사문서 위조·위조공문서 행사·위조사문서 행사. 참담했다. 갓난아이 때부터 애지중지 키웠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앞길이 창창했던 아들이 한순간에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다. 순백 같은 아이를 걸레짝처럼 닳도록 쓰고 쓰레기통에 버린 것만 같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수백~수천만원의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102명의 보이스피싱 공범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15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범죄자로 연루되기까지의 배경, 어떻게 일했고 붙잡혔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경제의 ‘인간 대포통장’ 기획은 3부에 걸쳐 보도됩니다.

[프롤로그]

[단독]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dodo@heraldcorp.com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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