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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장 1억 못 구해 집 빼앗길 판”
입주 한 달 앞두고 대출길 막혀
11년 기다린 실수요자의 한탄
연내 5만7000가구 대란 우려
정치권·전문가 “대책 세워야”

“입주가 한 달 남은 시점에 대출기준이 바뀌었어요. 당장 1억원을 어떻게 구합니까. 말도 안 돼요. 사전예약부터 꼬박 11년을 기다렸는데…. 내 집인데 입주도 못 해보고 송두리째 뺏기게 생겼어요.”(10월 경기도 하남 감일지구 입주를 앞둔 A씨)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실수요자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따라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인 데 이어 집단대출까지 옥죄기 시작하면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던 이는 물론 당장 입주를 앞둔 이에게도 빨간불이 켜졌다.

전셋집을 새로 구해야 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뛴 상황에 대출 한도가 쪼그라들면서 보증금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상환 능력을 넘는 과도한 대출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무주택 서민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봤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잇달아 부동산 관련 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지난해 말 대비 6% 이하로 맞추라고 지시한 여파다. ▶관련기사 12면

갑작스러운 은행권의 대출 제한으로 예비 입주자들은 특히 직격탄을 맞았다. 한도가 줄어든 데다 입주 잔금대출의 담보 기준까지 기존 ‘시세 또는 감정가’보다 한참 낮은 ‘분양가’로 바뀐 것이다.

실제 연내 입주를 앞둔 5만7000여가구가 ‘입주대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실이 4대 시중은행(신한·KB국민·우리·하나)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달부터 12월까지 중도금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사업장은 5만3023가구로, 이들의 대출 취급액은 5조7270억원에 달한다. 같은 시기 공공분양주택 입주가 예정된 가구는 3569가구다.

통상 입주시기에는 기존 중도금대출보다 더 많은 대출금이 필요하다. 입주자들이 중도금 잔액과 잔금 등을 포함한 새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다. 약 3조원의 신규 대출이 포함된 총 8조원의 잔금대출 한도가 필요할 것으로 유 의원실은 추산하고 있지만 그만큼의 대출을 내줄 은행은 없는 실정이다.

대출받아 중도금과 잔금을 내려던 계획이 입주를 코앞에 두고 틀어지면서 수분양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당장 돈줄이 막히면 금리가 높은 제2, 제3금융권으로 내몰릴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입주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놓일 가능성도 있다.

중도금 집단대출이 막히면서 청약시장 진입이 어려워진 실수요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사업 주체가 금융사를 통해 중도금 집단대출을 알선해주지만 최근 민간업체는 물론 공공조차도 입주자를 모집하며 중도금대출 불가를 안내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청약자가 알아서 돈을 구해와야 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주택 실수요자를 위해 대출 규제를 어느 정도 풀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소병훈 의원은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로 2~3년 전 정부 정책에 맞춰 중도금과 잔금 납부계획을 세운 이들까지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며 “기존에 아파트 계약을 체결한 무주택 서민에 대해서는 중도금대출이나 잔금대출을 허용해줘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관리 차원에서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애꿎은 실수요자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대출을 과하게 해주는 것도 문제지만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금융을 공급하지 않는 것은 경제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금융의 정의가 과연 작동하고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은희 기자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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