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태풍·어류·해녀의 길목 ‘가덕도’ 신공항 오기 전 원본 저장~
국립민속박물관 지난해 석,박사 급파 민속조사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지난 정권 부산 가덕도 신공항이 없던 것으로 얘기되더니, 다시 근년들어 가덕도 신공항 추진이 확정되자 작년부터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사,학예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첫삽을 뜨고 포크레인이 오면 가덕도의 원류를 저장할수 없기 때문이다. 석박사들이 가덕도로 긴급 출동한다. 그리고 사건기자 현장 뒤지듯 수개월 취재만에 달라질 가덕도의 비포(Before)를 타임캡슐에 저장할 수 있었다.

태풍의 길목, 수산자원의 길목, 군사교두보 등 많은 의미를 가진 가덕도의 포진지는 동남아 사원 처럼 숲으로 덮혀있다.
가덕도 봉수대제

풍어를 기원하는 천성동 달집태우기, 잡은 숭어들을 위한 숭어 고사, 우리도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존재감을 시위하는 듯한 가덕도 봉수대제 등 작은 섬 속에서 민속문화활동도 풍부했다.

7권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가덕도는 부산 중심부과 동해로 향하는 태풍의 길목이자 작지만 강인한 방파제이며, 통일신라 시대 당나라와의 무역에 중요한 항구였고, 1544년(중종39)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가덕진과 천성진을 축성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풍요로운 험지’이기에 가덕도 사람들의 지혜는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가덕도 어민들의 육소장망 어로장면.

▶세번의 변화, 가장 큰 변인 신공항= 가덕도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자연마을의 형성 시기도 오래되었으며, 200년 이상 넘게 정착한 토착민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민속문화를 간직한 가덕도에도 외부적인 개발 압력으로 인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먼저, 1990년대에는 부산항 신항의 개발로 어업권이 소실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고, 2010년에는 거가대교가 준공되면서 외지인들의 유입과 토착민들의 유출이 일어나는 등 개발붐이 일었다.

이제 신공항이 들어서면 다시 한번 변할 것이다. 민속박물관 석,박사들이 출동한 곳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의 5개 법정동(눌차동, 대항동, 동선동, 성북동, 천성동)이다. 이곳의 생업, 사회조직, 세시풍속, 민간신앙 등의 민속문화를 변화의 측면에서 기록한 동 단위 민속지 각 5권, 가덕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부산의 큰 섬, 가덕도’, 가덕도의 해양민속이 입체적으로 담긴 ‘물고기의 길목, 가덕도의 해양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동남아 신전 처엄 풀로 덮힌 포진지=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 군사 요충지, 일제강점기 러일전쟁을 대비한 포진지 건설, 1989년 부산광역시 편입, 거가대교 개통과 부산항 신항까지 가덕도의 과거와 현재까지 역사를 보고서는 조망하였다.

포진지 터에는 군사시설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으며, 막사는 가옥으로 개조하여 일부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가옥 중 일부는 도면 작업 하여 주거 방식도 기록하였다.

숭어잡이

▶대구, 숭어, 굴 - 수산물의 보고, 가덕도= 가덕도는 깊은 수심과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지점이라 해산물의 종류와 수량이 풍부하다.

그래서 가덕대구, 가덕숭어는 예전부터 임금님께 진상할 정도로 유명하였다. 숭어, 대구, 미역, 굴 채취 등 지금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도 많다. 그들은 육지에서 한끼에 최소 3만원은 줘야할 자연산 해산물 정식을 매일 먹는다.

굴 양식

▶가덕도와 육지를 이어준 탯줄, 여객선= 가덕도 사람들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후까지 거제·고성·마산·진해 등과 부산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을 이용했다.

여객선은 수심이 낮은 바다에서 항해할 수 없어 바다 한가운데서 각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목선 ‘산판배’를 타고 옮겨탔다.

여객선이 사라진 1980년대에는 성북동 선창마을에서 도선 진영호를 타고 진해 용원선착장으로 나가거나 마산·부산으로 가는 화물선을 탔다.

2009년 연륙도로, 2010년 연륙교 개통으로 가덕도는 육지화되었고 교통수단으로서의 배는 점차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연대봉에서 내려다본 가덕도 전경

▶태풍의 길목= 가덕도는 부산 최남단에 위치하며 산지가 발달되어 해안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 많다. 그래서 태풍이 남해안이나 동해로 북상할 경우 큰 영향을 받는다.

2000년 초반까지 하더라도 생업과 삶의 터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태풍으로 인해 일기, 사진 등 개인 기록물들이 거의 훼손되거나 유실되었다.

요즘은 다행히 기반시설 확충과 정보통신 발달 등으로 피해 규모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재해에 대한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해가 클 수록 극복하기 위한 열정도 커지고 기술도 고도화됐다.

▶물고기의 길목= 6척의 배를 이용하여 바닥에 설치한 그물을 들어 올려 숭어 떼를 잡는 어업 방식인 육소장망 어법은 험한 곳에서 생업을 이끌어야 하는 어민들의 지혜다.

1923년 우리나라 최초로 굴양식 시작한 곳도 가덕도이다. 전국 최대인 굴 종패 양식을 개발 관리했다.

가덕도 해녀들도 제주해녀 못지 않았다. 부산 기장으로 원정가던 제주해녀들과 노하우 교류도 있었으리라 예상된다. 가덕도에선 대구·고랑치·떡전어 등도 많이 잡혔다.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

▶부산의 미래 가덕도= 녹산국가산업단지・명지산업단지와 세계적 규모의 신항과 거제도 조선산업을 연결하는 가덕도는 동남광역권 항만・물류의 동맥으로 부상했다. 동남광역권의 해로와 육로 중심에 가덕도가 있고, 신공항이 건설되면 동북아허브 공항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가덕도는 명실공히 육로와 해로, 하늘길이 한 곳에 모인 메가시티의 꼭지점이 되는 것이다. 도로와 건물이 들어서 산천이 변하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발간한 『가덕도 민속지』는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증언하는 기억의 저장소가 될 것이다.

abc@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