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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금법 대란은 피했지만...“시장 안정 얻고 혁신 잃었다” [헤럴드 뷰-가상자산 재편...빛과 그림자]
4대 거래소 제외 원화 거래 종료
투자자 대형거래소 쏠림 현상 심화
고팍스 크레딧코인 폭락세 ‘반토막’
김치프리미엄도 최근 3%대로 완화
업비트 “연내 투자자보호센터 설립”
“코인 개발·유통 등 시장 위축 우려”

“원화마켓 거래가 종료되면서 고객상담센터가 제일 바빠졌어요. 4대 거래소가 아닌 곳은 위험하다는 불안감이 퍼지면서 출금하려는 투자자 상담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고객 이탈에 사내 분위기도 푹 가라앉았습니다”

‘특정금융정보이용법(특금법)’ 시행 이후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해 원화마켓 운영을 중단한 한 중소거래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금법 본격 시행일인 지난달 25일부터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를 제외한 거래소들에서 원화마켓 서비스를 할 수 없게 되면서 가상 자산 시장이 사실상 빅4 체제로 재편됐다.

제도권 진입에 탈락한 거래소는 비트코인 등 일부 코인으로만 매매가 가능한 코인마켓만 운영하게 된다. 이들 거래소에 가상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보유 자산을 현금화하려면 해당 자산을 원화마켓이 있는 거래소로 옮겨야만 한다. 옮기는 과정에서 코인 전송을 위한 지갑 생성, 거래소간 다른 시세로 인한 손익 등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원화마켓이 사라지는 거래소에서 보유하고 있는 가상자산을 정리하거나 대형 거래소로 가상자산을 미리 옮기려는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원화마켓과 원화입금 서비스가 종료된 가상자산 거래소 고팍스에서 거래되는 크레딧코인이 최근 폭락세를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크레딧코인 가격은 원화마켓 서비스가 종료되기 전 5000원선을 육박했지만 최근 2800원선으로 반토막났다. 원화마켓이 있는 4대 거래소에 크레딧코인이 상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서둘러 매도하면서 약세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대표 가상자산들도 미리 대형거래소로 옮기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가상자산 관련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대형 거래소에서 지갑 어떻게 만드나요’, ‘거래소간 이동 어떻게 하나요’ 등 거래소 간 가상자산 이동 방법 문의와 답변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특금법 시행 이후 가상자산 투자 자금을 단번에 잃거나, 중소 거래소들의 기습적인 폐쇄 등의 피해 사례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특금법에 따른 가상자산 시장의 대란은 일단 피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특금법 시행 이후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해 원화마켓 운영을 지켜낸 4대 거래소 체제는 더욱 공고해지게 됐다. 지난달 30일기준 가상자산 정보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업비트의 24시간 거래금액은 3조8191억원이었다. 빗썸(1조1178억원), 코인원(2534억원), 코빗(125억원) 순으로 뒤를 이었다. 4대 거래소를 제외하고 가장 거래 규모가 큰 고팍스의 24시간 거래량은 24억원에 불과하다.

예치금 규모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보인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예치금은 약 62조원 규모에 달한다. 이 가운데 4대 거래소 예치금은 전체의 96%에 해당하는 59조원에 달했다. 이마저도 최근 격차가 더욱 커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 99% 이상이 원화로 이뤄지고 있는 데다 편리하고 유동성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원화마켓이 있는 4대 거래소로 투자자들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4대 거래소 체제 이후 투자자금이 이들 거래소로 집중되는 ‘풍선효과’를 점치기도 했지만, 가상자산 시장의 과열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해외보다 국내 가상자산 가격이 높은 정도를 나타내는 김치프리미엄도 최근 3%대로 완화됐다. 통상 국내 시장이 과열되면 김치프리미엄은 10%대까지 치솟는다.

특금법을 시행하기까지 다소 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가상자산 투자를 이른바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순기능을 가져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형 거래소들도 시장 질서 확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비트 관계자는 “가상자산 투자 정보를 쉽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연내 투자자보호센터 설립을 완료해 투자자 보호에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4대 거래소 중심 질서가 공고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가상자산 생태계가 활력을 잃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 겸 앤드어스 대표는 “저마다 특색 있는 중소형 거래소가 사라지면 소형 코인들에 자금 유입이 끊길 것이고 일부 대형 거래소에 상장하는 비용도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핀테크학회장인 김형중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가상자산 시장이 안정을 찾는 대가로 혁신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새로운 코인의 개발과 유통이 위축되고 혁신 상품도 나오기 어려워져 장기적으로 한국 가상자산 시장이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박이담 기자

parkid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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