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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훈의 매크로뷰] 분명한 건 분명한 것이 없다는 것
박종훈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천천히 모든 가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고, 전등 스위치를 찾게 된다. 당신이 그것을 켜면 온 방에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옆방으로 가서 그 과정을 반복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류 와이즈가 6년이란 오랜 시간 난제를 한 걸음 한 걸음 풀어나간 과정을 설명한 말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며 수학적 과학적 접근법을 동경한 경험이 있다면 내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모델이 그동안 설명하지 못한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상상을 해보았으리라 생각한다.

학계에 몸담던 시절에 경험한 이런 과정을 금융시장에서 근무하는 요즘도 가끔 내가 하는 일에 적용해보려 노력한다. 불이 켜질 때 방의 모습이 내가 그려본 모습과 비슷할지 되묻곤 한다. 매달 나오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망하면서 그려본 방의 모습이 얼마나 현실에 가까울지 말이다. 물론 내가 스위치를 찾아 켜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켜지는 스위치란 점에 차이가 있긴 하다.

금융시장의 많은 이코노미스트에게 올해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일 것이다. 언제쯤 미국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작할 것이고 그 속도는 얼마나 빠를 것인가? 테이퍼링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효과는 어떨 것인가? 신흥시장(EM) 국가들은 2013년에 겪은 긴축발작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

2013년 미국 연준의 급작스런 자산매입 축소로 금융시장이 긴축발작을 경험한 이후 시장 참여자들은 미국 경제의 성장률, 인플레이션, 노동지표와 연준 의장의 발언 등에 귀 기울이며 언제쯤 연준이 테이퍼링을 시작할 지 촉각을 세워왔다. 특히 2013년 테이퍼링으로 크게 고생을 한 EM 국가들은 연준보다 먼저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미국의 자산매입 축소에 대비하는 국가들도 있었다.

혹자는 미국의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 매파적인 연준 위원들의 스탠스를 근거로 테이퍼링이 예상보다 조기에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란 전망을 해왔다. 다른 이들은 최근의 노동시장 추세와 코로나19 델타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연준이 올해 테이퍼링을 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매달 나오는 고용, 생산, 물가 지표를 분석하며 연준이 어떤 평가를 하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 금융시장은 출렁거렸다.

연준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시장에 테이퍼링 시기와 속도에 대해 힌트를 주려고 했다. 때로는 매파적인 태도로 때로는 비둘기적인 태도로 시장의 충격을 줄이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양적완화 축소를 준비하도록 노력해온 듯하다.

최근 미국의 경제성장률과 고용이 빠르게 개선되고 물가가 상승하면서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가 생각보다 빠를 것이란 주장이 힘을 받는 듯했다. 매파적인 연준 의원들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보면 양적완화를 빠른 시일 내에 마치고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를 통해 향후 급작스런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제의 경착륙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연준 위원의 매파적인 발언으로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연준 의장은 비둘기적인 메시지로 시장을 달래면서도 지속적으로 올해 안에는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 같다.

금융시장은 지난달 22일(이하 미국시간 기준) FOMC 회의에서 테이퍼링에 대한 공식 발표는 없더라도 테이퍼링 계획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자산매입 축소는 올해 시작하지만 그 속도는 경제 상황에 따라 조정 받을 것이라 봤다.

이날 FOMC 회의는 시장에 두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우선 자산매입 축소는 올 11월 FOMC 회의에서 발표하고 빠르면 11월이나 늦어도 12월에 시작해서 내년 중반쯤 마무리할 것이란 점이다. 자산매입 축소 과정은 매월 정해진 액수로 자율주행(auto pilot) 하듯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리의 경우 내년에 인상한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빠르면 내년 하반기에 올릴 수 있다는 여지를 둔 듯했다. 이는 시장의 예상보다 매파적인 발언으로 그간 시장이 연준의 메시지를 너무 비둘기적으로 받아들여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연준의 매파적인 발표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연준이 스위치를 켜서 테이퍼링에 대한 일정을 보여주었음에도 여전히 연준의 의도를 해석하는데 시간이 걸린 듯하다. 발표 당일에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2bps 가량 하락하며 연준의 매파적 발표를 예상한 듯 보였다. 그러나 9월 23일부터 29일까지 금리가 21bps 가량 상승했다. 시장이 생각한 것보다 연준의 결정이 매파적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시장은 다시 묻는다. 최근 미국의 금리 상승이 연준의 매파적 정책 때문인가? 오히려 9월 22일에 보인 반응이 연준의 결정에 부합하는 모습이고 이후 며칠 간의 모습에는 다른 이유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수일 간의 금리상승 배경에는 연준의 정책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반영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붕괴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유, 가스 등의 가격 상승이 그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접근법을 적용하는 경제학이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명료함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불을 켜는 순간 빛의 영향으로 방의 배치에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직 분명하게 볼 수 있을 만큼 불빛이 밝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금융시장은 연준의 자산매입 축소에 대한 불확실성 감소로 좀 더 정확하게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중국 시장의 불안과 원유·가스 가격 상승과 같은 또 다른 불확실성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더 재미난 것은 이런 불확실성으로 연준의 가이드라인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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