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주거형태인 아파트는 시대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다양한 수종과 식물, 분수까지 자연을 들여온 친자연적 아파트 조경이 수십년을 거치면서 작은 숲과 다름없는 생태계를 이룬 곳이 많다.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공학자이자, SF소설가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곽재식 박사는 ‘아파트 생물학’(북트리거)을 통해 아파트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아파트 단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를 비롯, 철쭉, 고양이와 아메바, 지의류, 미구균 등 친숙한 생물부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생물까지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아파트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소나무는 2000년대, 아파트의 고급 브랜드화에 톡톡히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포주공아파트. 인구가 늘어나고 아파트가 재테크 수단이 되면서 반포주공은 재건축에 성공하는데,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자 건설사는 단지 내 1200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며, 이를 자랑거리로 내세웠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영양분이 쓸려나간 산성토양에서 자라지 못하지만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 지조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높은 산 바위 위, 꿋꿋하게 수백년 풍파를 견뎌내는 소나무 아래 하잘 것 없어 보이는 균류가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소나무가 번식하는 데는 청솔모도 한몫한다. 솔방울에서 솔씨를 뽑아 먹는 청솔모는 나중에 먹기 위해 솔씨를 땅에 묻어두지만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는 바람에 소나무는 싹을 틔우게 된다.
소나무 만큼이나 친근한 철쭉도 산성 토양,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 한반도 철쭉의 학명은 로도덴드론 슐리펜바키 막심으로, 러시아 학자가 처음으로 유럽학계에 보고했다. 진달래와 철쭉은 구분하기 쉽지 않은데, 저자가 알려주는 쉬운 구분법이 있다. 꽃만 있으면 진달래, 잎도 보이면 철쭉이다. 진달래꽃은 화전으로 먹을 수 있지만 철쭉은 그레야노톡신이라는 독성물질 때문에 입에 대면 안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 아파트까지 오르내리는 모기의 생존력과 번식력은 장구벌레에서 모기로 바뀌는 변태에 있다. 얼룩날개모기의 절반 정도는 6km까지 날아서 이동한다. 모기가 널리 퍼지는 데날개의 역할은 크다. 모기의 날개는 긴 다리에 비해 작고 연약한데, 비장의 무기는 바로 빠른 날갯짓이다. 1초에 수백 번 정도 날개를 퍼덕이는데 그 때문에 공기를 빠르게 휘저어 모기 특유의 날갯소리가 나게 된다. 빨간집모기가 사람이 만든 지하철역에 적응, 지하집모기가 생겨났으며 유전자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아파트 단지의 축대나 옹벽, 화단의 바위나 보도블록 같은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의류가 다른 생물과 합체해 살아가는 모습을 외계인이 인간의 뇌 속에 들어가는 식으로 비유하는 등 SF상상력도 빛을 발한다.
이윤미 기자
아파트 생물학/곽재식 지음/북트리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