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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그널만 잘 잡았어도”…‘전자발찌 살인’ 제도 보완 목소리 커져
법무부, 야간외출 명령 위반에도 확인 안 하고 돌아와
경찰, 5차례 피의자 집 방문했지만 확인 못하고 복귀
전문가 “법적 제도 없어 대응의 한계…제도 보완해야”
“직무수행 중 타인 신체 피해 등 유발 시 면책해야”…경직법 개정안 주목
전문가들 ‘교정개혁’ 필요성 강조…“교도소, 약물치료 등 역할 수행해야”
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잇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모 씨가 31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법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발길질을 한 뒤 온몸으로 저항하며 법원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김희량·강승연·채상우 기자]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살인한 이른바 ‘전자발찌 훼손·연쇄살인 사건’과 관련 법무부와 경찰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관리·감독에 소홀했던 법무부, 소극적인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법무부와 경찰은 제도의 부재로 대응의 한계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적극적인 대응을 위한 제도 정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31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사건을 두고 법무부와 경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전자발찌 관련 (법무부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경찰 역시 보호관찰관의 협조에 따라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의 피의자 강모(56) 씨가 범죄를 저지를 사전 신호를 보냈는데도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가 외출 제한 명령을 어겼는데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서울동부보호관찰소 범죄예방팀은 27일 강씨의 야간 외출 제한 명령 위반 경보에 따라 현장에 출동했으나 도착 전 강씨가 주거지로 돌아가 대면조사를 하지 않고 복귀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야간시간에 귀가했기 때문에 귀가 이후에 조사하는 것은 통상적이지 않다”며 “관할 보호관찰소 경우 야간(오후 6시~다음날 오전 9시)에 2명이 100여명의 대상자를 관리하는 실정”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자발찌 부착자가 외출 제한 등 특별 준수사항을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경찰은 강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잠적한 후 경찰에 자수하기 전까지 총 다섯 차례 강씨의 자택을 방문했다. 하지만 강씨 자택에 진입하지 못하고 자택에 첫 번째 희생자의 시신이 있다는 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사이 강씨는 두 번째 살인을 저질렀다.

이 역시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현행법에 따라 압수수색 영장 없이 피의자의 공간을 경찰이 내부 진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현장 경찰관들의 좀 더 적극적인 경찰권 행사가 이뤄지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며 “경찰관 직무 집행 범위가 굉장히 협소한데 경찰청과 협의해 제도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제도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법무부와 경찰이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제도장치가 보완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과 경력이 있는 데다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간 경우에 한해서는 영장 없이 현행범 차원에서 거주지를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도 “경찰은 사실상 할 수 있는 걸 다한 셈”이라며 “법 근거가 없는데 경찰에게 책임을 지우기 어려운 면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이 수색영장 없이도 적극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면책 규정을 마련해주는 법안 처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27일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안들을 상정해 논의했다. 이들 법안은 소방관의 구조·구급활동 중 발생한 과실에 대해 형을 감경·면제해주듯 직무 수행 중인 경찰관에게도 면책 규정을 도입하자는 취지다.

경찰청은 ‘정인이 사건’ 이후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적극적인 초동 대응을 할 수 있도록 경직법 개정을 통해 면책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정인이 사건이나 이번 전자발찌 사건에서도 경찰관이 법적 책임을 질까 봐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지 못했다.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다면 재물손괴 걱정 없이 자신 있게 문을 따고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법안(경직법)이 조금 더 빨리 도입됐다면 안타까운 사건이 또 발생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교정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 직업교육·교화교육 등으로는 재범을 막기 어렵다고도 부연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씨의 범죄는 교정을 거치며 오히려 진화했다”며 “성폭력·절도·폭력범죄가 복합적으로 얽혀 살인이라는 흉악범죄로 표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법무부의 교정개혁이 절실하다”며 “현재 교정 당국에서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방법은 범죄자 개인별로, 범죄 특성에 따라 다 다르게 구체화해야 한다”며 “예컨대 성범죄자는 단순히 성교육 이수가 아니라 정신과 치료, 약물치료 등 교도소가 병원적 기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hope@heraldcorp.com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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