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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亞 12개국 신화 모티브 드라마 연출한 EBS 정현숙 PD, "신화로 만든 어린이콘텐츠는 나라의 정신자산”
EBS ‘비스트 오브 아시아’
亞 12개국 신화 모티브 국제공동제작 드라마
숨은 의미 재해석,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풍부한 연출경험·현지 네트워크가 큰 도움
신화는 각 나라·인간을 지켜주는 힘
세계 어린이들 많이 공감하고 함께 느꼈으면
태국·라오스 등 7國 참여 시즌2 제작 확정
EBS 정현숙 PD는 “아시아의 신화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보는 ‘비스트 오브 아시아’ 연출이 힘들었지만 행복하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아시아 여러 나라와 함께 어린이 드라마를 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시아의 정체성을 찾아보고, 그런 이해를 통해 협력과 상생의 시대를 대비하려고 제작한 드라마라는 데에 보람을 느낀다.”

최근 EBS 1TV를 통해 방송된 국제 공동제작 대기획 성장드라마 ‘비스트 오브 아시아’(Beasts of Asia)의 연출을 맡았던 EBS 정현숙 PD의 말이다.

‘비스트 오브 아시아’는 아시아 12개 국가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국제 공동제작 어린이 청소년 드라마 시리즈다. 서구 신화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의 신화를 소개함으로써 아시아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좀 더 긴밀하게 협력하며 상생의 시대를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기획 의도다.

“한국의 단군신화 곰과 호랑이 이야기, 인도의 선악 신화, 몽골의 건국 신화, 부탄의 검은 목 두루미 신화, 베트남의 두꺼비 신화까지 총 5편의 아시아 신화 속에 숨은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편당 20여분 정도의 분량으로 현지 아역 배우와 어린이들이 출연해 의미를 더했다. 1편 ‘페어 트레이닝’은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티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단군신화 곰과 호랑이 이야기를 두 양궁 선수가 훈련을 버텨내는 스토리로 녹여냈다. 멘탈 운동인 양궁 훈련을 통해 어려운 시기를 페어(짝)가 좋은 경쟁자가 돼 함께 가야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부탄의 검은 목 두루미 신화가 포함된 4편 ‘새엄마’는 어린 아이가 젊은 새 엄마를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서서히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아이는 두루미 춤을 추면서 새엄마와 친해지고, 두루미는 신(神)들이 환생해 날아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청자들은 “두루미가 자식을 잃고, 빈 공간을 채워주러 온 것”이라는 등 나름의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3편 ‘촌놈’은 몽골의 푸른 늑대와 하얀 암사슴 신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결합을 통해, 시골에서 울란바토르로 전학온 학생과 이를 괴롭히던 도시 학생이 서로 화합하는 현명함을 보여준다. 5편 ‘나의 영웅 꽝하이’는 힘 없는 아이들이 모이면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엉클 토드(두꺼비) 신화와 연결시켰다.

다섯 편을 모두 보고나면, 국제사회를 살아가며 소통이 중요해진 아시아 각 국 어린이들에게 좋은 교양물이자 교육용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각 국의 신화를 재해석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정현숙 PD는 “현지 스태프들과 협업을 해야 했지만, 어려운 점이 많았다. 뻔한 것을 뻔하지 않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재각색을 해야했다”면서 “솔직하게 않으면 외면받는다. 무슬림 아이들은 얌전한데, 혹시 히잡을 쓴 아이가 여름에 방에 들어가면 너무 더워 히잡을 벗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보고 결례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어린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야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디테일은 각 국 스태프와 의논해 결정했다. 재미있으면서도 피곤한 작업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경쟁 보다는 공존의 힘이 느껴지는 ‘비스트 오브 아시아’ 프로젝트는 의미가 있지만 이런 방대한 작업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35년이라는 풍부한 연출 경험을 지니고 현지 제작진과도 네트워크가 있는 베테랑 PD였기에 가능했다.

기획과 연출을 맡은 정현숙 PD는 1987년 EBS PD로 입사해 다양한 부서를 거치며 30년 넘게 어린이 및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제작에 집중해왔다. 다자간 국제 공동제작 프로그램이자 출산장려프로그램인 ‘베이비 온더 웨이’와 ‘미래인 교육’ ‘미래학교’ ‘패밀리 아시아’ 등을 연출했다. 특히 EBS 다큐프라임 ‘미래학교’로 2019년 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과 한국방송대상 교육예술분야 작품상을 수상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석사, 영국 런던대 골드스미스 TV 드라마 석사, 영국 맨체스터 소재 교육사회연구소(ESRI)에서 교육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현재 EBS 교육제작부 소속인 정 PD는 지금도 아시아태평양방송연합(ABU) 어린이분과 위원장이다.

“아시아 국가 대다수가 많은 인구수에 비해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 능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뭔가 같이 해보면서, 내가 누군지 알아야 내 인생이 보람 있다고 생각된다. 어릴때 부터 그렇게 교육받아야 한다. ‘비스트 오브 아시아’는 인간의 순수성, 자긍심을 드러내준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팀을 짰다.”

정 PD는 “신화는 각 나라 정신이다. 스피리추얼(spiritual)하다는 게 영적이라기 보다는 인간을 지켜주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순간에 큰 힘이 나오는 것은 우연히 발휘되는 게 아니고 나라가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닐까? 신화(콘텐츠)가 나라의 정신자산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국가적인 재산이다. 한국도 잘 살게 된 지 얼마 안됐다”면서 “신화는 문화가 발달할수록 섬세하다. 아시아 협력체로 같이 제작하는 것은 당장의 승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동지를 만드는 문화유산 공유작업이다”고 설명했다.

‘비스트 오브 아시아’는 시즌2 제작도 결정됐다. 시즌2에서는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까지 6개국이 참여한다. 최근 국가적인 어려움으로 시즌 1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던 미얀마까지 총 7편의 드라마가 소개돼 총 12개 아시아 국가의 신화 스토리가 완성될 예정이다.

“PD 생활 내내 고정적으로 매여 있지 않고 외국으로 떠돌아 다니면서 작업을 했다. ‘비스트 오브 아시아’는 어린이들 사이에 토론자료가 되고, 초등학교에 뿌려지고, 커리큘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이 공감하고 느꼈으면 좋겠다. 이런 일에 한국이 씨를 뿌리는 서포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 정년이 2년 남았다. 여러 나라와 함께 만드는 게 힘들지만 토끼보다는 거북이로 완주하겠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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