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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역에 무너진 신체의 자유 [현장에서]
“젊으면 패스·태극기는 컷…계엄령인 줄”
지난 15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 입구에서 경찰들이 펜스를 치고 출입통제를 하고 있다. 미로처럼 이어진 펜스는 출구를 알 수 없어 보행자를 하여금 공포심을 자아내게했다.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취업준비생 유모(27) 씨는 15일 모 기업 입사 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 지각할 뻔했다. 서울 청계천변의 한 건물에서 시험을 쳐야 하는데 유씨가 지하철에서 내린 오후 1시께에는 지하철 2호선 시청역의 12개 출구 중 광화문광장에서 가장 먼 3개 출구만 통행이 가능했던 탓이었다.

중구 서소문동 방면으로 한참을 후퇴해서 지상으로 나온 순간 유씨는 “미로 찾기가 시작됐다”고 떠올렸다. 유씨는 보도에 바리케이드가 즐비한 데다 경찰들의 안내에 따라 길을 돌아가더라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목적지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도보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20분이 넘도록 빙빙 돌다 겨우 시험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각종 보수·진보 시민단체들이 ‘1인집회’, ‘걷기대회’ 등을 명목으로 서울 도심 집회에 나섰던 14~16일 경찰은 186개 부대 1만1000여 명을 동원해 광화문광장과 종로 일대 곳곳을 통제했다. 우회를 권하거나 통행을 막는 것은 물론 소지품을 확인하거나 사원증, 공연 티켓 등을 목적을 증명하도록 했다.

심지어 경찰은 차림새를 보고 임의로 통행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어디에 가시냐’, ‘무슨 일로 가시냐’ 등의 질문이 이어지자 유씨는 수험표를 들고 다니며 경찰들에게 보여 줬다. 그나마 젊고 목적을 증명할 수 있어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것이 유씨의 설명이다. 그는 “젊어서 수험표를 보여 주지 않고 말로만 설명해도 패스(통과)였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대부분 컷(제지)당했다”며 “말로만 듣던 계엄령 같았다”고 했다.

반면 중장년층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통행을 제지당했다. 14~16일 집회에 참여했던 구주와 국민혁명당 대변인은 “태극기를 들고 가면 아예 길을 가지 못하게 막아 버렸다”며 “전혀 법적 근거가 없는 공권력 남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같은 철통 보안 덕(?)에 올해 광화문 집회에는 지난해 광복절 집회만큼 많은 인원이 운집하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14~16일, 사흘간 집회 참가자 중 입건된 인원은 3명이다. 경찰을 폭행하는 등 공무집행 혐의를 받는 남성 3명이 현행범 체포됐다. 지난해 20명이 현행범 체포된 데 비하면 적은 수치다.

이들을 체포하는 게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뒤따른다. 서울중앙지법은 16일 오후 9시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는 국민혁명당 당원 박모(54)의 구속영장 신청을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경찰은 현행범 체포한 2명 역시 조사를 마친 뒤 각각 석방했다.

그럼에도 서울경찰청은 이번 광화문 집회와 관련해 “불법집회를 개최한 단체의 주최자와 주요 참가자들에 대해서는 집시법·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내사에 착수했다”며 “향후 채증자료 분석 등을 통해 확인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사법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어떠한 자유와 권리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1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국민담화에서 한 말이다. 물론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막는 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근거로 ‘어떠한 자유와 권리’가 어디까지 제한될 수 있는지는 다시 고민해 볼 일이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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