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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치의 그늘’ 금융지주...기형적 지배구조 리스크로 [은행시대의 종말 ④새로운 지배구조의 도래]
개인·비금융 지배력 제한 정부 영향력 키워
회장-이사회 절묘한 밀월 내부 견제 무력화
자리지키기 급급 3연임·나이제한 내규까지

지배구조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자가 기업의 소유주인 주주를 대신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도록 하는 일련의 제도 또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특히 금융기관의 지배구조는 일반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한층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융기관 파산은 자사 손실 뿐 아니라 국민들의 경제력에도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 전반에도 시스템 리스크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럴 경우 국가 경제에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이 앞다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진 E(Environmnet·환경)와 S(Soical·사회)가 중심이고 G(Governace·지배구조)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열기가 덜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E·S의 성패도 G의 뒷받침 여부에 달려있단 지적이 나옴에 따라 G의 선진화가 선순위 과제로 추진돼야 한단 분석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하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수출산업 등에 자금 지원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정부는 은행의 주식보유 한도를 정해 개인이나 특정 기업의 소유를 막았다. 주인 없는 은행에서 정부가 사실상 경영권을 좌우하는 이른바 ‘관치금융’이다. 내부 이사회보단 정부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관치금융 아래에서 성장한 은행의 부문별한 대출도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은행이 거액을 빌려줬던 기업들이 쓰러지면서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무너졌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은행 시스템을 되살리는데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정부의 영향력은 계속 유지됐다. 그나마 주식시장 개방으로 외국자본이 주요 은행 지분을 과반이상 가지면서 예전과 같은 노골적인 관치금융은 어려워진다. 하지만 막강해진 금융감독조직의 힘은 은행 경영을 좌우할 정도의 영향력을 유지하기에 충분했다.

부실 금융회사에 대한 신속한 구조조정 필요성, 소유·지배구조 투명성 제고, 금융산업의 대형화·겸엄화 추세 등에 따라 2000년대 들어 금융지주제도가 국내 등장했다.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감사위원회 제도가 실시되고, 내부통제체제가 구축된다. 하지만 형식 뿐이었다. 정권의 실세, 전직 관료들이 금융지주 최고경영자가 되기도 했고, 금융지주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금융지주 회장의 이른바 ‘셀프연임’ 체제가 구축되기도 한다. 이사회 대부분을 구성하는 사외이사를 회장이 추천하고, 그렇게 뽑힌 사외이사가 자신을 추천한 회장의 연임을 결정하는 구조다. 주주대표가 아닌 ‘거수기’ 사외이사이다 보니 무한 연임도 가능한 구조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내부견제 장치다. 신한지주가 회장과 사장간 내분사태인 ‘신한사태’를 겪으며 만 70세 이상 취임금지 내규를 만들었고, 하나금융도 이를 채택하면서 일종의 불문률이 됐다.

현재 금융지주 회장은 대부분 3연임이 가능한 나이다. 하지만 현직 은행장과 주요 계열사 CEO들 대부분은 회장이 되더라도 3연임이 불가능하다. 3~6년 사이에 회장 직을 둔 치열한 권력 다툼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장기적이 비전을 펼치기 보다는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할 수 있다. 정치가 혁신을 대신하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금융지주제도가 스무돌을 넘어선 현재 애초의 시행 취지가 충분히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여러 평가들이 나온다. 우선 지주회사를 통해 부실 기관 통폐합을 이뤄낸 것은 소기의 성과란 분석이다. 하지만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와 수익성 개선이 기대만큼 이뤄지지 못했단 주장이 나온다. 여기에 여전히 압도적인 은행 비중으로 지주사와 은행간 긴장관계가 필연적으로 내재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점도 지적된다. 일각에선 은행 중심의 지주사 운영이 창의적인 투자은행 문화도 토태시킨단 비판도 제기되고 있으며, 특히 최근 핀테크들을 중심으로 혁신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조직이 이에 적합한 능동성과 탄력성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적지 않다. 또 지주 회장으로의 권력 집중 현상이 경영권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동시에 높은 권한에 비해 책임은 불명확한 측면이 있단 평가가 나온다. 이에 설립자가 회사와 자신을 운명공동체로 인식, 전적 책임성을 갖고 진두지휘하는 핀테크들과는 근원적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단 지적이다.

결국 유능한 경영진을 성과지표에 따라 객관적인 성과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구축,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창립자에 준하는 주인의식으로 ESG 등 중장기 목표를 완수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게 과제란 분석이 나온다.

유고은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6일 “농사를 지을 때 E와 S를 열매로 본다면, G는 튼실한 열매를 결실하게 만드는 농부”라며 “중장기적으로 G에서 이니셔티브를 갖고 E와 S로의 주도적 자원 배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지속가능한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유구조 리스크 등으로 금융기관을 꼭 최대주주 경영체제로 바꿀 필요는 없지만 정해진 임기로 책임경영을 하기 어려운 문제는 개선돼야 한다”며 “다른 나라처럼 경영실적, 소비자보호, ESG 등을 최고경영자의 핵심성과지표에 지정해 그에 따라 연임 횟수를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경원 기자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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