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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의 상처’ 가득한 퍼스트 무버”...수제맥주 대부의 ‘행복한 도전’ [피플&스토리-윤정훈 오비맥주 C&S 이사]
유학시절 값비싼 맥주 싸게 먹으려
홈브루잉에 입문한 수제맥주 1세대
국내 수제맥주 태동하던 시점 귀국
시장 개척과정 수많은 ‘최초’ 타이틀
품질력 각인 위해 국제검증 ‘73관왕’
양조 스킬 자랑보다 음용성에 주안점
‘대기업 맥주=싼 저급맥주’ 오해 불식
협업 맥주 백양은 값 비싼 몰트 사용
글로벌 1위 ‘자존심’...‘OEM’ 절대사절
수입産 현지화·KBC 브랜드 육성 주력
‘수제맥주의 대부’로 불리는 윤정훈 오비맥주 C&S 이사는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수제맥주의 경험과 노하우를 글로벌 맥주회사 시스템에 접목하고 있는 ‘고단한’(?) 길이다. 윤 이사는 그러나 “새로운 도전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상섭 기자

서울 신사동 소재 ‘위워크 신사’ 5층에 가면 서너개의 탭 디스펜서(Tap Dispenser, 생맥주를 따르는 기계)와 여러 통의 케그(생맥주 통), 다양한 종류의 컵들로 꾸며진 바(Bar) 테이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속이 훤이 보이는 음료 냉장고에는 갖가지 맥주가 자리를 잡고 있다. 마치 수제맥주 바를 그대로 옮겨온 듯 하다. 이곳은 오비맥주의 신사업(NB)팀이 둥지를 튼 곳으로, 지금은 ‘수제맥주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윤정훈 C&S(Craft & Specialties) 운영 이사가 이곳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오비맥주가 수제맥주 협업 전문 브랜드 KBC(Korea Brewers Collective) 사업을 시작하면서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를 전격 스카웃한 것이다. 일부 호사가들은 ‘초심을 잃은 게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수제맥주 업계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인 그는 이곳에서 또 다른 ‘도전(Challenge)’을 하고 있었다.

윤 이사는 “수제맥주 업계에서 갈고 닦은 나의 실력과 노하우가 글로벌 1위 맥주회사 시스템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 지 궁금했다”며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제맥주 업계에 입문한 후 늘 새로운 시도, 다양한 도전을 많이 하다보니 고단한 날이 많았다”면서도 “그래도 새로운 도전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윤 이사가 맥주와 사랑에 빠진 것은 22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네바다 주립대에서 화학을 전공하던 그는 우연히 친구 아버지에게서 홈브루잉(Home Brewing)을 배우게 됐다.

그는 “유학생에게 맥주는 꽤 비싼 술이다 보니 쉽게 먹기 어려웠는데, 친구 아버지에게 홈브루잉을 배운 후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즐길 수 있게 됐다”며 “홈브루잉을 좋아하는 나를 보고 ‘본인이 좋아하는걸 직업으로 삼는게 어떠냐’는 친구들의 권유에 과감히 전공을 바꿨다”고 회상했다.

윤 이사가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JC데이비스에서 맥주를 정식으로 전공하고 미국 현지 브루어리에서 브루 마스터(brew master, 맥주의 전 공정을 관리하는 양조 기술자)까지 했지만, 귀국한 후 국내에서 일을 바로 시작하기는 사실 어려웠다.

그가 돌아온 지난 2006년,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소규모 펍(Pub)을 중심으로 한 하우스맥주(house beer) 형태로,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하면서 현지인 브루 마스터들이 명성을 얻을 때였다.

특히 필스너나 바이젠, 둥켈 등 유럽 맥주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던 때다 보니 ‘미국’에서 맥주를 공부한 ‘토종’ 한국인인 윤 이사는 업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옷 가방 두 개만 가지고 와서 수제맥주를 시작했는데 모국인 한국에서 뭔들 못하겠냐는 생각에 귀국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며 “친구들과 그 당시를 회상할 때 우스갯소리로 ‘한국 수제맥주 발전을 위해 5개월을 먹고 놀았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윤 이사는 다른 브루 마스터들에 비해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많다. 한국인으로서 정식으로 맥주를 전공한 첫 인물인데다 미국의 인기 수제맥주인 IPA(인디아 페일 에일)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고, 한국인 최초로 ‘월드비어컵’과 같은 세계적 수준의 맥주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지금도 11개의 국내외 맥주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의 최초·최고 수식어는 사실 ‘훈장’이라기 보다 ‘영광의 상처’ 같은 것이다. 국내에서 수제맥주 시장을 개척하며 많은 편견과 시련에 부딪치자 해답을 밖에서 찾으면서 이같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중국산 수제맥주 논란이다. 그가 수제맥주 업체 ‘플래티넘맥주’에서 근무하던 시절 처음으로 옌타이에 중국 최초로 크래프트 맥주 공장을 설립했다. 당시 국내 주세법 상 국내 생산 수제맥주는 팔면 팔수록 손해를 나는 구조여서 제품 유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에 공장을 지었는데, 중국산 수제맥주 논란이 일면서 상품의 신뢰도가 떨어졌다.

윤 이사는 “사실 공장이 중국에 있긴 하지만 홉이나 맥아 등 모든 원재료는 모두 유럽산을 써 우리끼리는 중국산은 ‘공기’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였지만, 소비자들이 중국산이라고 우리 맥주를 안 먹더라”며 “그때부터 소비자들의 품질에 대한 의심을 없애기 위해 국제 맥주대회에 적극 출품, 국제적으로 공인된 검증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플래티넘맥주는 그가 몸담았던 10여년 동안 국내외 맥주 대회에서 73관왕을 차지했고, 올해에도 2개의 국제대회에서 추가로 수상을 했다.

윤 이사가 브루 마스터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바로 ‘드링커빌러티(Drinkability, 음용성)’다. 브루어(brewer, 맥주 양조자)는 연한 맥주에 대해선 ‘수익 vs 소비자’, 진하고 독특한 맥주를 만들 땐 ‘자아도취 vs 소비자’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이때 반드시 일반 고객들도 마실 수 있는, 이른바 ‘음용성’이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실력파 젊은 브루어들이 강한 맛과 향을 내는 일명 ‘펑키 맥주’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 이사는 반대로 ‘대기업 맥주=싼 저급 맥주’라는 인식도 사실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국내 대기업의 맥주 제품은 음용성이 넓은 것이지, 싼 재료로 만든 저급한 맥주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오비맥주의 주력 제품인 카스는 매년 국제 맥주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수준급 맥주다. 오비맥주의 KBC 브랜드가 편의점 CU와 협업해 판매 중인 ‘백양 맥주 BYC 비엔나 라거’는 베이스 몰트로 일반 몰트보다 가격이 비싼 비엔나 몰트와 뮤닉 몰트를 사용한다.

그는 “독일 되멘스 맥주학교 자료에 보면 오감 중 시각이 87%를 차지할 정도로 시각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정하고 들어간다”며 “맛과 향은 전체의 3%도 안될 정도로 적어 블라인드 테스트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같은 맥락으로 맥주 라벨에 오비맥주 혹은 AB인베브와 같은 대기업 브랜드가 있으면 사람들은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시작한다”며 “솔직히 최근 출시한 백양같은 경우는 레시피를 공개할 수 있을 정도로 품질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윤 이사가 오비맥주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현지화(Localization)’과 ‘KBC 브랜드 육성’이다. 현지화는 구스 아일랜드나 파타고니아 등 오비맥주가 수입하고 있는 수제맥주를 국내에서 원래 레시피 그대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현지와 국내 환경이 다르고 원료도 같을 수 없는데, 같은 기준에 맞추는 것은 사실 새로 맥주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비맥주가 윤 이사와 같은 베테랑 브루 마스터를 스카웃한 것도 수입 수제맥주의 제조 공정을 모두 잘 알면서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오비맥주가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KBC 사업도 그의 소관이다. KBC 사업은 소비자들의 구매패턴과 같은 빅데이터를 보유한 유통회사들과 협업을 통해 수제맥주를 생산, 판매하는 사업이다. 이미 편의점 CU와 GS25 등과 함께 백양 맥주와 노르디스크 맥주를 생산, 판매 중이고 최근에는 세븐일레븐과 배달의민족과 함께 ‘캬’ 맥주도 선보였다.

그는 “백양 맥주는 처음에 CU 담당자들이 깨끗한 속옷을 연상시키는 ‘양털같은 맥주’를 만들어달라고 했다”며 “뜬구름 잡는 얘기같을 수 있지만, 미팅을 마친 그날 저녁에 첫 느낌을 그대로 살려 레시피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그가 추진 중인 KBC의 초반 성과는 우선 ‘합격점’이다. CU의 백양맥주와 GS25의 노르디스크맥주 모두 발주 1~2회차 만에 초도 물량 40만캔을 모두 판매했다. 소비자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날개돋힌 듯 팔린 것이다.

그는 “우리의 생산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처럼 일정 규모 이상 유통업체와의 협업이 필연적”이라며 “감성타코 등 맥주 매출 규모가 꽤 큰 프랜차이즈들과도 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OEM(주문자 생산방식) 생산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글로벌 1위 맥주 업체로서 우리의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일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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