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먹는 데 한눈이 팔린 너구리의 털을 뽑는 박새가 포착됐다. 털로 자신의 둥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박새는 둥지를 만들기 위해 보통 이끼와 나뭇가지를 쌓고, 그 위에 털 등 각종 재료를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담배 필터, 테니스공 보풀 등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박새는 주변 사물을 두루 활용하지만 대개는 동물의 털을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주로 동물의 사체나 떨어진 털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살아 있는 동물의 털을 뽑는 장면들이 공유되면서 학자들이 연구에 나서고 있다.
최근 미국 일리노이대 마크 하우버(Mark E hauber) 생태학과 교수와 헨리 폴록(Henrry pollock) 박사과정생은 학술지 ‘ecology’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우버 교수는 “포유류 털로 둥지를 짓는 새들은 대개 죽은 동물이나 떨어진 털을 주워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우리가 본 장면은 박새가 살아 있는 미국너구리의 털을 뽑는 모습이었고 너구리는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생태연구자들은 조류의 새로운 행동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자료조사에 나섰다. 9건의 기존 연구결과가 있었지만 조류관찰가들이 이 같은 모습을 포착한 영상은 더욱 많았다.
아마추어 야생동물애호가 댄 밸러드는 지난 3월 여우의 털을 뽑는 박새를 포착했다. 여우가 낮잠을 자는 사이, 박새가 끊임없이 여우의 몸을 쪼아대며 털을 모으는 장면이다. 밸러드는 “박새는 매일 여우에게서 털을 뜯어갔다”며 “둥지의 단열성을 높이기 위한 마감재로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털을 뽑아가는 조류는 주로 댕기박새나 검은머리박새였다. 이들이 털을 훔치는 대상으로는 너구리, 고양이, 개 등 다양한 포유류가 해당됐다.
연구에 참여한 폴록은 “주로 온대기후 지역에 서식하는 새들에게서 이 같은 행동이 흔한 것으로 미뤄보면 둥지 보온을 위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살아 있는 동물에 붙어 털을 뽑는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로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연구에 참여한 제프리 브라운 교수는 천적을 막는 효과로 설명한다. 새끼를 안정적으로 키우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는 것이다. 실제 아프리카의 핀치새도 포식자의 배설물을 둥지에 활용한다.
브라운 교수는 “나무구멍 등에 둥지를 트는 큰뿔솔딱새는 천적을 막기 위해 둥지에 뱀 허물을 두기도 한다”면서 “동물들의 흥미로운 행동들이 간과된 경우가 여전히 많다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