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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한번도 경험 못한 올림픽

2002년 2월 동계올림픽 취재를 위해 방문한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는 그야말로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올림픽 개막을 불과 5개월 앞두고 발생한 9·11테러 때문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 정부는 올림픽 참가 선수의 6배 규모인 1만6000여명의 보안요원을 배치하고 3억1000만달러에 달하는 보안예산을 투입했다. 관람객과 취재진은 경기장에 들어갈 때마다 길게 줄을 서서 ‘보안검색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무장한 군인과 경찰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 보안요원들은 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확인하고 신발까지 벗게 한 후에야 검색대를 통과시켰는데 사실 불편함보다는 테러 공포가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은 순간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역시 테러 위험 속에 개막을 맞았다. 런던이 2012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다음날인 2005년 7월 7일 런던 시내에서 동시다발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영국 정부는 해병대를 포함한 군 병력을 늘리며 치안 강화에 나섰지만 올림픽 기간 내내 테러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2016년 리우올림픽은 지카바이러스와 치안 문제로 전 세계 스타플레이어들의 불참 선언이 잇따랐다.

사실 과거 대부분의 올림픽이 갖가지 위험 요소를 안고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23일 개막되는 ‘2020 도쿄올림픽’은 불안과 불확실성 면에서 ‘금메달급’ 대회로 남을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상 최초로 올림픽을 1년 연기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정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기에 기어이 대회 개최를 강행했다. 올림픽 최초로 무관중 대회로 치러지지만 올림픽을 이틀 앞둔 21일 현재 올림픽 관련 확진자는 선수를 포함해 67명까지 늘었다.

일본 내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교도통신이 17~18일 18세 이상 전국 남녀를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올림픽 개최에 따른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대한 질문에 87%가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급기야 현지 매체는 감염 폭증 위험에 ‘대회 도중 올림픽 중단’이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비관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안전·안심 올림픽’을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일본 국민 절반 이상은 “불가능한 얘기”라고 단언한다.

이쯤 되면 올림픽이 누구를 위한 이벤트인지 헷갈리게 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혹독한 훈련에 쏟아부으며 인내한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여전히 꿈의 무대다. 선수 인생을 걸고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무대다. 하지만 선수들과 개최국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전 세계 수만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량을 겨뤄야 하는가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 시대에 올림픽은 어떤 의미일까, 새로운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오는 8월 8일 도쿄올림픽 폐회식 공연의 콘셉트는 ‘우리가 공유하는 세상(Worlds we share)’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는 뜻하지 않게 전 세계가 하나라는 사실을, 생각보다 많은 걸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바이러스가 아닌, 인류애와 희망, 불굴의 의지만 나누는 대회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부디 아무 일 없이 끝나길. 처음으로 올림픽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게 됐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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