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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2년, 성실을 먹고 산 열아홉살 미장공이 건설업계 巨木으로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이 걸어온 길

“정직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랬더니 신뢰가 따라왔습니다”

정직과 성실, 그리고 신뢰.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79)을 설명하는 단어다.

1962년 19세 청년 정창선은 지인의 소개로 미장일을 하면서 건설업에 발을 디뎠다.

많은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정직하게 성실히 일하면 최소한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다는 희망이 있었다. 청년은 묵묵히 노력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광주 건설업계에서 ‘정창선’이란 이름 세 글자를 모르는 이들이 없게 됐다. 1983년 정창선 회장은 청년 시절 공사현장에서 알게 된 지인들과 금남주택건설을 세운다. 중흥그룹의 뿌리가 된 기업이다.

1989년에는 중흥건설을 설립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2000년 초반 ‘중흥S-클래스’ 브랜드를 런칭하고 호남지역은 물론 경기도 남양주 등 수도권까지 진출했다.

정점은 세종시였다. 수도권의 대형 건설사들이 포기하고 나간 현장에서 그는 가능성을 봤다.

중흥건설은 단일 브랜드로는 최대규모인 1만3000세대를 ‘완판’했고 본격적으로 전국구 건설사로 입지를 다졌다. 경기도 수원 광교 택지개발은 정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광교 내 금싸라기 땅을 놓고 대형건설사들이 눈독을 들였지만 승자는 중흥이었다. 예정가의 132%, 무려 7500억원을 베팅한 정 회장의 승부수는 광교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돌아왔다. 과감한 승부의 뒤에는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철저한 사업 검토가 숨어있다. 비업무용 자산은 사지 않고, 보증은 되도록 서지 않으며, 적자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는 수주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三不) 원칙이다.

뻗어가는 사업만큼 사회적 소임에도 헌신적이다. 2001년 대한주택건설협회 중앙회 부회장을 시작으로 2018년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및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연임)을 맡으며 재계의 큰 어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공적을 인정받아 2005년 주택건설의 날 동탑산업훈장, 제70회 건설의 날 건설산업발전 공로상 등 수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우건설 지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모든 실사 과정이 끝나는 내년 초가 되면 자산규모 20조원이 넘는 재계 20위권의 대기업 총수가 된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는 수백, 수천억원을 과감히 투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검소함을 강조한다. 부인 안양임 여사를 일생의 동반자로 치켜세우며 감사함을 전한다. 장남 정원주 부회장을 비롯해 1녀2남에 대한 자식 사랑도 숨기지 않는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은 정창선 회장에 대해 ‘인생의 스승’이라고 칭했다. 이 총장은 “정직과 성실, 신뢰라는 어쩌면 단순하지만, 가장 지키기 어려운 가치를 바탕으로 굴지의 기업을 이뤄낸 것에 대해 존경스럽다”고 평가했다. 서상범 기자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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