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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의기능’ 잃어버린 최임위...빨리만 끝났다 [내년도 최저임금 9160원]
노사, 일찌감치 최종안...수정안 제출 거부
심의는 사라지고 결정만 남은 최임위 논란

“노동계 마지막 수정안은 최저임금 1만원이었고, 경영계는 8850원이었다. 이후 추가 수정안을 요청했지만, 양측 모두 더 이상 자체 수정안을 제시할 수 없다고 했다.”

권순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는 지난 12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최임위 전원회의 후 이같이 말했다. 노사 양측이 일찌감치 물러설 수 없는 최종안을 냈고, 더이상 논의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이에 이날 오후 11시 55분, 올해보다 5.1% 오른 9160원으로 결정됐다. 2017년 이후 가장 이른 시간에 결정된 것이다.

2018년 최임위는 마라톤 회의를 계속하다 새벽 4시35분이 돼서야 끝났다. 2019년에는 새벽 5시30분, 지난해에는 2시8분에 끝났다. 이번에는 새벽까지 격론이 오가던 지난 3년과는 다르게 차수변경도 없었다. 양측이 모두 양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빠르게 냈다.

논의 결렬은 이미 오후 11시께부터 시작됐다. 민주노총이 더이상 얘기할 이유가 없다며 회의장을 뛰쳐나갔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용자위원도 전원 퇴장했다. 마찬가지 이유였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회의장을 뛰쳐나온 것은 격렬한 대립이 일상화된 최임위에서도 이례적이다.

이번 최저임금은 공익위원이 제시했다. 노사 대립으로 심의에 진전이 없자 공익위원들은 심의 촉진 구간으로 9030~9300원을 설정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자 일찌감치 표결로 내년 최저임금을 확정했다.

최임위가 ‘심의기능’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은 여기서 나온다. 노사 양측이 일종의 최종안을 결정해두고 최임위에 임한다는 것이다. 이번엔 그것이 노동계 입장에선 최저임금 1만원, 경영계 입장에선 8000원대 후반이 됐다. 경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적정 인상률을 고르는 것이 아닌 정무적 주장판이 된 셈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상공인은 힘들다는 불만, 노동계는 1만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불만을 가질 것이 분명한데 그 이유는 정치논리로 최저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이라며 “최저임금심의위원회는 말만 심의위원회지 사실 결정위원회로 노동계와 경영계 어느쪽 숫자를 선택할지 결정만 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니까 앞선 2년은 확 올리고, 다음 반대 여론이 득세하니 확 내리고 하는 것”이라며 “경제, 고용상황 아래에서 얼마를 올려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고 노동계와 경영계가 특정 숫자를 정하고 대립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고, 둘 중 어느 쪽 의견을 들어줄지는 사실상 정부인 공익위원에게 달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앞선 4년 동안 최저임금은 노사 승패가 극명하게 갈렸다. 정부 출범 첫해 16.4%라는 역대 최고 수준 인상률을 나타냈고, 올해는 1.5%라는 역대 최저 인상률을 기록했다. 두번은 노동계 승리로, 두번은 경영계 승리로 끝난 셈이다.

박준식 최임위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최저임금을 1만원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의지는 문재인 정부 출범 때부터 정치권에서 중요한 정책적 약속 중 하나였고,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정책 열망이 강했다”며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초기 2년 최저임금의 인상 의욕에 비해 현실이 뒷받침하지 못한 측면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태화 기자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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