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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화는 생각을 바꾸는 일...결국 사람·고객 위한 혁신의 길” [피플 & 스토리-권준학 NH농협은행장]
전통적 은행 패러다임 변화 진행
빅테크와 경쟁, 오픈뱅킹도 시작
13여년 전부터 블록체인 공부
업계최초 로보어드바이저 도입도
기민한 소규모 프로젝트 조직 넘어
결합과 교류에 기반한 새 조직 필요
앱 주문 커피도 결국 내려야 하듯
디지털에 아날로그 요소 구현이 핵심
취임 이후 6개월이 흐른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사에서 만난 권준학 행장은 “디지털 혁신의 핵심에는 늘 사람과 고객이 있다”고 강조했다. 권 행장은 이어 “금리 등 조건이 좋은 상품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더 높은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생활플랫폼으로 변화하겠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 제공]

“전통적 은행의 모습을 지우는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는 진행 중이죠. 빅테크와 경쟁하게 됐고 금융사간 경계를 허무는 오픈뱅킹도 시작됐습니다. 결국 새로운 뱅킹 서비스의 핵심은 고객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라고 봅니다”

권준학 NH농협은행장은 금융업계에서 디지털 혁신의 가장 앞자리에 선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이미 13여년 전부터 금융공학과 블록체인을 공부했고, 퇴직연금부장 시절 업계 최초로 퇴직연금에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기도 했다.

은행장 취임 이후 6개월이 흐른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농협은행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농협은행이 IT융합센터의 문을 연 날이었다. 따로 떨어져있던 일반 사업부서와 IT부서를 하나로 묶는 조직 변화다. 권 행장에게 IT는 더 이상 ‘전산실’ 시절의 후선업무(back-office)를 맡던 지원부서가 아니다. 전쟁 같은 경쟁의 최전선에서 사활을 걸고 경쟁해야 할 곳이다.

권 행장은 융합센터 설립 이유로, “애자일(Agile)만으론 부족하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민첩하고 기민한 소규모 프로젝트 조직이 아닌, 결합과 교류를 기반으로 한 새 조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권 행장에게 디지털 혁신은 기술의 변화가 아닌 사람의 변화, 인식의 변화다. 조직을 바꾸기 보다는 조직문화를 새롭게 하는 도전이다.

“고객 기반 데이터를 활용해 새 서비스를 하려면 이종업종 간의 결합이나 다른 산업과의 교류 등이 필요해요. IT는 IT만, 마케팅은 마케팅만 하는 식으론 지금 시대에 통할 수 없습니다. 융합 시스템 적용했더니 서로 디지털, 마케팅 하던 친구들이 IT가서 근무하겠다고 하더군요. 진정한 의미의 결합과 교류가 이제 이뤄지고 있습니다”

권 행장은 금융업은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변화하면서 모든 금융상품이 한눈에 비교되고 고객들이 손쉽게 거래금융사를 변경할 수 있도록 플랫폼화 되어가고 있다는 점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래서 농협은행도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들어갈 생각이다.

“단순히 금리조건이 좋은 상품이 넘어 고객에게 더 높은 가치를 드릴 수 있는 상품을 제공해야 합니다. 확실한 타깃에 최적화된 마케팅이 중요하겠죠. 늘 고객 가까이에 있는 생활금융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데이터 기반 마케팅, 빅테크 제휴, 디지털 신사업 육성 등을 모든 노력을 다 해볼 작정입니다”

농협중앙회에 뿌리를 둔 보수적인 농협은행에서 이처럼 조직을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웬만한 확신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권 행장은 32년간 농협에서 얻은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과감히 움직였다.

권 행장은 오래전부터 새로운 금융에 대해 끝없이 고민해왔다. 2008년 9월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중요한 자극이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중개 중심의 은행업에 변화가 시작됐다고 봅니다. 이후 핀테크, 플랫폼과의 경쟁 등은 이를 더 가속시켰고 이제는 더 이상 전통적 기법으론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이 됐어요. 위기가 가져온 또 다른 위기인 셈이죠”

금융공학을 이해하고 새로운 금융의 미래를 고민하던 이 때 그가 조우한 또다른 운명이 블록체인이다.

“10여년 전 나카모토 사토시의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관련 논문을 처음 접했습니다. 금융의 패러다임도 중앙집권적이고 폐쇄적인 것에서 시장 참여자 위주의 대체 시스템으로 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때리더군요. 지금도 (코인 등 디지털 자산에) 투자는 전혀 하지 않지만, 블록체인과 관련된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금융 뿐 아니라 전 산업에서 블록체인 기반과 비(非) 블록체인 기반의 한판 승부가 벌어질 겁니다”

디지털 전환에 그 누구보다 열심인 권 행장이지만 늘 마음에 한 가지는 반드시 잊지 않고 있다. 바로 사람이다. 결국 이 모든 변화는 좀 더 사람을, 고객을 위하려는 노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커피를 앱(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하는 시대이지만, 인스턴트 보다는 직접 내린 커피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게 됐어요. 금융이 아무리 디지털로 전환되더라도 결국엔 사람의 온정, 진심이 담겨야 합니다. 아무리 디지털화가 돼도 오프라인 공간을 찾는 분들은 계세요. 저희는 지점을 줄이기 보다는 좀 더 잘 활용할 방법을 먼저 고민합니다. 그래서 저희 목표도 ‘디지털 선도은행’이 아니라 ‘고객중심의 디지털 선도은행’이죠”

권 행장은 주 1회는 양재 디지털혁신캠퍼스로 출근한다. 최근엔 메타버스가 금융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 토론했고, 이어 AI를 어느 수준까지 도입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고민은 깊고 구체적이다. 스스로도 변화의 대상이다. 직원들을 바꾸는 접근이 아니라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는 접근이다.

“디지털화는 결국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에요. 직원들도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행장이 직접 참여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움직일 지, 영업방식이 달라지는지, 현장 구현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결과 값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만나서 토론하고 이야기하고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정리=성연진·박자연 기자

yjsung@heraldcorp.com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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