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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세계 권위주의 정권들, ‘가짜뉴스 방지법’으로 언론 통제 중
팬데믹을 이유로 언론에 재갈 물리는 독재자들
언론인들, 코로나 대응 실패·백신 새치기 접종 폭로했다 구금까지
언론인 46% “정작 가짜뉴스 원천은 언론 통제 나서는 정치인들”
[123rf]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이집트 언론인 모하메드 모니르는 지난해 7월 재판을 기다리던 중 감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된 채 산소를 더 달라며 애원하다 사망했다.

그가 체포돼 감옥에 갖힌 이유는 코로나19에 대한 이집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에게 적용된 주된 혐의는 바로 ‘가짜뉴스’를 유포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사실과 전혀 다른 가짜 뉴스와 잘못된 정보의 홍수를 불러왔다.

전 세계에서 독재를 일삼는 권위주의 정부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가짜 뉴스 확산을 제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 비판 세력을 단속할 구실을 만들어냈다.

팬데믹을 이유로 언론에 재갈 물리는 독재자들

국제언론연구소(ISI)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전 세계 17개국에서 ‘가짜 뉴스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헌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해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에선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지적한 언론과 언론인을 대상으로 가짜 뉴스 금지법을 적용해 재갈을 물렸다.

예를 들어 한 온라인 언론 편집자는 코로나19 희생자로 추측되는 시신을 묻기 위해 1000여개의 무덤이 조성됐다는 내용의 보도로 인해 6만루블(약 94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프리랜서 언론인인 타티아나 볼츠카야는 러시아 병원 내 인공호흡기 부족 현황과 의료 현장의 고충을 담은 의료인과의 익명 인터뷰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벌금 3만루블(약 47만원)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3~10월 사이 ‘가짜 뉴스 방지법’이란 이름의 언론 통제 법안을 통과시킨 국가들. [이코노미스트]

여기에 ‘동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며 10년 넘게 권위주의적 행보를 이어온 빅토르 오르반 대통령의 헝가리, 동남아의 대표 ‘스트롱맨’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필리핀 등이 가짜 뉴스 금지법을 통과시킨 국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오는 11월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야권 대선주자 4명을 일주일새 줄줄이 체포하며 5선을 준비하고 있는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민주화 세력을 ‘홍콩 보안법’을 통해 탄압하며 홍콩을 ‘중국화’의 길로 이끌고 있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역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가짜 뉴스 방지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코로나 대응 실패, 백신 새치기 접종 폭로했다 구금까지

많은 전문가들은 새로 제정된 가짜 뉴스 방지법들이 코로나19와 관련된 허위 사실 유포를 막겠다는 본래 의도보다는 정권 보호를 위해 반정부 인사들과 비판적 언론을 통제하는데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마르코 밀라노비치 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많은 국가의 정부들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적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더 광범위하게 억제하기 위한 모호한 수단으로 가짜 뉴스 방지법을 활용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미 뉴욕 소재 비정부단체(NGO)인 언론인보호위원회의 코트니 래쉬는 “가짜 뉴스 방지법을 도입한 정권들의 진정한 목적은 독립 저널리즘을 방해하거나 성가신 보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복하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123rf]

구체적으로 지난해 3월 ‘방위법’이란 이름의 가짜 뉴스 방지법을 제정한 요르단은 이 법을 활용해 아무런 이유 없이 신문 내용을 감시하고 검열, 폐쇄할 수 있다. 특히, 요르단의 한 뉴스 웹사이트 발행인인 자말 하다드는 공무원들의 코로나19 백신 새치기 접종 사실을 폭로했다 구금되기도 했다.

한시적으로 시행된 것임에도 국가 지도자가 임의로 가짜 뉴스 방지법의 효력을 연장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헝가리에선 오르반 정권이 지난 3월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계기로 가짜 뉴스 방지법을 발효했고, 국가비상사태가 6월에 끝났음에도 11월부터 해당 법을 다시 시행했다.

정작 가짜뉴스 원천은 언론 통제 나서는 정치인들

가짜 뉴스 방지법을 도입해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권위주의 통치자들의 경우 정작 자신의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선 관대한 경우가 많다.

가짜 뉴스 방지법이 통과된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코로나19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코로나19 특효약으로 선전해 방역에 혼선을 빚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국제언론인센터가 전 세계 기자 14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6%가 선출된 공직자들이 코로나19와 관련된 가짜 뉴스의 원천이라고 답변했다.

정권의 탄압에 이미 언론들의 활동 범위는 한껏 축소된 모양새다.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TASS, 로이터, AP]

가짜 뉴스 방지법 등이 시행되고 있는 국가의 언론들은 ‘자기 검열’이 심해지며 자유로운 취재 활동과 보도에 제약을 받고 있다.

언론사 차원의 법률 대응팀 등이 가동되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당할 수 있는 처벌 가능성에 언론인들은 더 움츠러들고 있다.

자포자기 끝에 몇몇 언론인들은 망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벨라루스 국적의 기자들은 폴란드로, 니카라과 국적의 기자들은 코스타리카로 망명했다.

뉴스 배포 플랫폼을 자유과 비밀이 보장되는 텔레그램 등으로 옮기는 ‘사이버 망명’도 크게 늘고 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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