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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거침없는 집값에 가려진 진짜 위기

집값은 코로나 팬데믹의 무풍지대인 것 같다. 지난해 5월 이후 전국 아파트값이 16% 올랐다. 서울을 비롯해 지역별로 20~30% 이상 오른 곳도 많다. 한 해 동안만 이 정도고 지난 몇년간을 봐도 집값 상승은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가계소득은 올라도 한 자릿수고 작년 한 해는 제자리인데 어떻게 집을 살 수 있단 말인가.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패닉바잉(공포에 의한 매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과도하게 빚내서 투자)’와 같은 현상이 이제 청년세대의 안타까운 자화상이 된 듯하다.

내 집 마련,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한 정책목표다. 누구나 염원하는 꿈이기도 하다. 미국의 아메리칸드림을 비롯해 많은 나라의 꿈의 정책에는 내 집 마련이 핵심이다. 중산층 육성과 사회안정 기반, 경제번영을 위해 내 집 갖기 정책은 자가 소유 민주주의라는 기치하에 추진됐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주요 선진국의 10가구 중 7가구는 내 집을 갖게 됐다. 유럽은 ‘자가 소유자의 나라’가 됐고, 미국과 호주는 ‘자가 소유 사회’를 자부했다. 어떻게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일까.

답은 ‘금융’이다. 쉽게 빌리고 많이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금융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내 집 갖기를 지원하는 정부 역할이 컸다. 공적 자금을 장기 저리로 제공하고, 무상 보조금을 지원하며, 세금을 감면하는 것은 일종의 소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세계화로 금융시장 개방 압력이 커지면서 2000년대 금융이 본격적으로 세계화됐다. ‘재테크’라는 말도 이때부터 회자했다. 노동이나 저축보다는 투자가 각광받는 시대, 돈이 돈을 만드는 사회가 가능하게 됐다. 정부의 역할도 점차 변해갔다. 복지 부담에서 후퇴하며 이제 시장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게 했다. 주택은 점점 더 상품화됐고 금융은 이를 도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러한 접근이 잘못됐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과도하고 무분별한 대출과 재테크 열광 수요가 만들어낸 위기였다. 위기 이후 금융은 규제로 강화됐고, 줄어든 정부의 빈 자리는 민간임대주택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그 대가는 청년세대가 치르게 됐다. 청년의 월세살이는 늘었고 대출 문턱은 더 높아졌다. 우리나라의 영끌세대가 한류라도 된 듯 전 세계의 청년세대는 내 집 마련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가 소유 대국들의 자가율은 70%에서 62~63%로 추락했고 앞으로도 더 떨어질 전망이다. 부모 도움이나 빚내지 않고서는 비싼 집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셧다운 상황에도 집값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거의 다 올랐다. 초저금리, 경기부양, 유동성이 세계적인 집값 상승의 공통 요인이지만 빙산 아래에는 금융이 집값을 떠받치고 키우고 있다. 물론 빚 없이 집을 구입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레버리지는 여러 면에서 효율적이고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과도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가계대출(1666조원)의 56%는 주택담보대출(931조원)이고, 전세자금 대출까지 고려해 77%에 이른다. 자가 소유율은 그리 늘지 않았는데 집 때문에 빚만 늘어나고 있다. 금융의 저주가 엄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산에 투입될 자금이 부동산에 쏠려 집값만 자극한다. 노동 없는 부의 창출에 열중해 노동이 폄하된다. 그린에너지나 주거비 절감을 위한 미래 주거기술 개발이 도외시된다. 부의 분배가 왜곡된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사회 불신을 낳고 갈등을 야기한다. 이는 금융의 저주가 낳을 결과들이다. 자가 소유 대국들이 내세운 ‘자가 소유 민주주의’는 이제 ‘수익 추구 민주주의’로 변질됐다고 평가받는다. 집은 불평등의 엔진이 됐고, 베이비붐세대와 밀레니얼세대 간 주거 격차만 벌려놨다. 고장 난 주거사다리를 어떻게 복원시킬 것인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가 성찰하고 정부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짚어볼 때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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