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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제풀면 집값자극, 안풀면 민심이반”...고심깊은 부동산 정책
공급대책·분양시장·균형발전 등
표심 눈치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최종결정 못하고 신뢰추락 자초
“장기적인 프로젝트 진행이 해답”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딜레마에 빠졌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주택시장은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졌다.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밀집지역 모습. [헤럴드경제DB]

지금 주택시장의 관심은 온통 오는 11일 열리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 쏠려 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완화 방안에 대해 결론을 낼 계획이기 때문이다. 1주택자라면 상위 2%만 종부세를 부과하고,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현행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하는 게 핵심이다. 통과 여부는 불확실하다. 세금 인하를 원하는 민심을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여전히 ‘부자 감세’에 불과하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이런 ‘딜레마’를 드러냈다. 세금 인하를 하려면 ‘부자감세는 나쁘다’고 믿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심 이탈을 걱정해야 하고, 세금 규제를 현행대로 유지한다고 하면 민심을 따르지 않는다고 욕을 먹는 식이다.

딜레마는 ‘선택해야 하는 길은 둘인데 그 어느 쪽도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비교 불가능한 가치나 대안을 놓고,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의 손실이 커 여전히 결과가 좋지 않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다. ▶관련기사 20면

문 정부가 처한 딜레마는 거의 모든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타난다. 서울과 부산에서 치러진 ‘4·7 재보선’의 참패를 겪은 후, 공공중심 주택공급 정책, 전월세 급등을 초래한 ‘임대차보호법’, 집값 상승 근원지로 꼽히는 강남에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한 ‘재건축 재개발 활성화 방안’, 시중 주택 매물 감소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각종 ‘세금 규제’ 등을 뜯어고치는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규제 완화를 하자니 ‘불로소득’을 인정하고, 투기수요를 자극하는 대책이란 비판에 직면한다.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으니, 이젠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한다’, ‘이러다 대선 참패 가능성 커진다’는 소리를 듣는다.

분양시장에선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HUG(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심의, 분양가상한제 시행 등의 방법으로 새 아파트 분양가를 주변 집값 시세보다 한참 낮추는데 성공했으나, 결국 시장을 왜곡시켜 ‘분양 로또’ 천국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분양을 앞둔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는 당첨만 되면 10억원 이상 시세차익이 난다. 역대급 시장 왜곡을 방치해선 안된다며 시장 상황에 맞게 분양가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민주당 지지층과 시민사회 반대 목소리가 크다.

지역 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국토 균형발전 차원에서 GTX 노선 연결, 가덕도 신공항 건설 등 온갖 숙원사업을 검토하고 추진하고 있으나, 한편에선 역대급 재정 투입으로 인한 비판, 인프라 중첩에 따른 비효율, 선거용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역대 가장 많은 100조원 가까운 예타(예비타당성 조사)면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추진해도 욕을먹고, 하지 않아도 욕먹는 상황이다. 사면초가다.

문재인 정부가 겪고 있는 딜레마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이재국 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처음부터 이분법적으로 서민과 건설업계, 무주택자와 다주택자 등으로 선을 긋고 시작하니, 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선 스스로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주택공급’ 추진이 그랬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7월까지 “주택공급은 충분하다”고 했다. 집값이 오르는 건 다주택자와 투기세력 때문이며 주택공급을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건 건설업계와 다주택자들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문 정부가 규제에 집중하는 사이 민간 건설사들의 주택공급은 크게 위축됐다. 민간부문 서울 주택 인허가 실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7만1097채에서 2017년 10만2435채, 2018년 6만4142채, 2019년 5만8995채, 2020년 5만3932채로 빠르게 줄었다.

집값은 계속 올랐다. 문 정부는 난감해졌다. 건설업계의 주장이라고 일축하던 ‘주택공급 확대’ 대책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주택공급이 충분하다’던 입장을 바꾸면 정책 신뢰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그냥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향후 주택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더 불안해 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해 8월 ‘8·4공급대책’과 올 2월 ‘2·4공급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중장기 시장 안정을 위해 공급 확대를 선택한 건 바람직한 방향이었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또한번 치명타를 맞았다.

정부가 딜레마에 빠지면,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책임을 다른 제 3의 조직에 미루거나, 결정을 지연시키는 경향이 강해진다. 문 정부는 외부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행정기관위원회’가 역대 정부 중 가장 많다. 600개 가까운 각종 위원회 중 국토부 산하에만 195개나 된다. 국가스마트도시위, 대도시권광역교통위, 부동산서비스산업정책위 등이 문 정부에서 새로 구성한 위원회다. 국토부 산하의 몇몇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는 모 교수는 “우리가 결론을 내는 것처럼 비춰지는 데, 사실은 정부 입장이 훨씬 더 많이 반영된다”고 말했다.

난처한 상황에서 책임을 위원회로 넘기는 것처럼 느꼈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가 책임을 미루고 주요 결정을 지연시키면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사이 당정청 내부에선 수시로 제각각 의견이 튀어나온다. 좌충우돌, 우왕좌왕처럼 보인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더욱 더 악화된다.

한문도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는 “업계, 전문가 등과 충분한 토론과 협의 없이 특정 기간을 정해 단기간 무리한 결정을 하려면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부동산 정책도 임기 이후까지 장기간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딜레마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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