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시장 과열로 실수요자 당첨 가능성 줄고
기존주택의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져
분상제, 단기적 집값 억제 효과 있지만
공급 위축으로 장기적으로는 가격 상승 촉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10억원. 오는 17일 1순위 청약을 받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의 당첨자가 거둘 수 있는 최소 시세차익 추정가다. 분양가는 역대 최고 수준이지만 3.3㎡당 1억원이 넘는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반값 수준이라 당첨만 되면 1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그야말로 ‘로또’다.
‘로또분양’은 분양가상한제(이하 분상제)가 낳은 기형적 산물이다. 현금부자만 넘볼 수 있는 래미안 원베일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월 분양한 세종시 ‘세종 리첸시아 파밀리에’도 분양가가 전용면적 84㎡ 기준 시세보다 4억원 가량 저렴했고 지난달 동탄신도시에서 연이어 나온 ‘동탄역 디에트르 퍼시티지’와 ‘동탄역 금강펜테리움 더시글로’ 역시 반값 아파트로 주목받았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정부의 규제로 분양가가 시세보다 확연히 낮게 책정되면서 서울·수도권은 물론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청약에 당첨되면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막대한 시세차익이 뒤따르다 보니 ‘일단 넣고 보자’는 분위기가 확산했고 로또를 노린 청약수요는 분양시장을 장악했다.
10일 부동산114와 직방이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간 94.1대 1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1년(2017년 5월~2018년 4월)간의 경쟁률(15.5대 1)보다 6배 치솟았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의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도 12.6대 1에서 24.6대 1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청약광풍이다. 공급물량 부족에 가수요 유입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수요자의 당첨 가능성은 작아졌고 신규 아파트가 주변 시세만큼 뛰거나 프리미엄이 붙어 치고 올라가면서 기존주택의 가격까지 끌어올렸다. 정부가 분상제를 도입하며 강조했던 ‘시장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역대 정부는 집값 흐름에 따라 분양가 규제를 조였다 풀었다 했다. 분양가를 통제한 건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해 궁극적으로 주택가격 상승을 저지하겠다는 차원이었다. 실제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민간택지 분상제가 시행된 2007~2014년 서울의 아파트값 변동률은 0.4% 수준으로 분양가 자율화 시기인 2000~2006년(13.6%)보다 낮았다.
그러나 부작용도 컸다. 주택 공급이 위축됐고 공급이 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투자목적의 수요가 늘어나며 시장 안정성을 해쳤다. 특히 지난해에는 시장불안과 맞물려 신규 분양시장과 기존주택시장이 동시에 과열됐다.
전문가들은 분상제가 단기적으로 집값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가격 상승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특히 주택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선 수급불균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신도시 건설로 200만가구씩 공급할 때 분상제는 건설사의 과도한 이익을 억제하고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위축시켜 공급부족을 심화시켰고 ‘로또 아파트’ 같은 문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분상제가 주택시장을 왜곡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정부로서도 진퇴양난이다.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른 현 상황에서 분양가 규제를 풀었다가는 가격 상승의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좋은 아파트를 분양받을 기회를 놓치게 되는 청약 대기자의 반발도 크다.
시장 과열과 공급 부족 문제를 풀기 위해 분상제를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다만 충분한 주택공급이 뒷받침돼야 시장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식시장에서 공모주를 청약할 때 15~20%의 할인율이 적용되듯 분양가도 시장가격과의 괴리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며 “주택채권입찰제를 통해 수분양자 혜택을 줄이고 차익을 회수해 임대주택을 짓는 데 활용하는 방안 등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