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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갬빗] 막 오른 한미 정상회담…‘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무성했던 담론들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19일 방미 길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워싱턴DC로 출국했다.

한미 정상회담 참석차 출국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올라 환송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 만나는 이번 회담은 1여년을 남겨둔 문 대통령의 임기 뿐만 아니라 향후 4년 간 한미관계는 물론 한반도 정세와 인도태평양 지역 정세 속 한국의 역할과 운명을 좌우할 바로미터가 될 수밖에 없다.

한미 정상회담 의제 ‘나무’들이 말하고 있는 거대한 ‘숲’

오는 2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언급되고 주요 ‘의제’들로는 ‘백신 파트너십’·’반도체 및 배터리 협력’·’대북정책’·’미국 주도의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Quad)’ 등이 있다. 지난 13일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는 북미·남북대화 재개와 한미동맹 재확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경제회복, 기후변화 협력 등이 논의됐다. 백신과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한미 기술협력 논의도 이뤄졌다.

[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하지만 지금까지 언급된 의제들은 앞으로 한미동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시작으로 ‘21세기 전략동맹’, ‘한미동맹 공동비전’ 등의 이름으로 발전한 한미 동맹은 양자·지역·범세계적 범주에서 한국과 미국이 함께 지향할 가치와 안보질서, 사회문화를 정의해왔다.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한반도·지역·글로벌에서 미국과 한국이 동의한 패권구조·국제규범·경제질서라는 큰 틀이 ‘숲’이라면 이에 대한 결과물로써 지금의 이른바 ‘의제’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원하는 것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을 인도태평양 권역 내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주요 동맹국으로 신뢰할 수 있을지 가늠할 전망이다.

바이든 정부의 '아시아 차르’인 커트 캠벨 NSC 인도태평양 조정관.[AP]

이러한 의도는 커트 캠벨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보좌관이 이날 한 국내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다. 캠벨 조정관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번 회담은 한미의 양자 파트너십을 다양한 이슈에 있어 확대하고 심화할 기회”라며 “아세안과의 협력, 태평양제도 국가들과의 협력, 미얀마 상황에 대한 접근 등 우리의 지역적 접근 조정을 논의할 것이다”고 했다.

또 “이번 방문은 두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 선도하는 경제, 기술적 파워하우스가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과제를 다루기 위해 나란히 서있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와 열리고 개방된 경제, 기술경쟁력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는 데에 설정한 핵심가치 및 현안들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로 거론되고 있는 백신·반도체 및 신기술 협력은 대중국 견제를 위한 결과물인 셈이다.

[헤럴드DB]

대북정책과 관련해서 바이든 행정부의 관심은 ‘비확산’ 및 ‘국제규범’에 맞춰져 있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말 ‘실용적이고 조정된’ 대북접근을 추진할 것이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타결식 해법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인 접근법을 택한 것 같지만,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언급해온 ‘북한의 특수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캠벨 조정관은 “대북제재는 그대로 유지되며, 유엔 및 북한 주변국들과의 외교를 통해 제재를 계속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선(先) 비핵화 후(後) 상응조치’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캠벨 조정관은 “연합훈련은 우리의 전체적 준비태세와 상호운용성,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풀더라도 기존 규범의 틀 안에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원하는 것

문재인 정부의 한미정상회담 제1 목표는 대북정책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연설과 신년기자회견 등 여러 계기 북미대화 재개 필요성을 강조하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대적인 대북접근 전환을 촉구해왔다.

특히, 지난 4년간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지난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등 부분적 성과를 얻은 점을 강조해 미국으로부터 한반도의 ‘특수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독자적 차원의 경제협력이 필요하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부분적 완화를 바이든 행정부에 촉구하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

이외에 한미 양자 현안으로는 코로나 백신 수급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을 백신허브로 거듭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백악관과 국무부에 접촉해 6월 백신 조기공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이 강조하는 ‘대중국 견제’에는 발을 빼왔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한국에 쿼드 가입을 공식 요청하지 않았으며, 쿼드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민감한 사안에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또다른 양자 주요 현안인 ‘반도체·기술협력’에 대해 언론은 정부가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는 ‘민간투자’를 언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국이 원하는 ‘숲’ 없이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논할 수 없다

이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생각해보자. 이번 한미 공동성명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글로벌에서의 한국 위치를 설정하면서 대중관계를 비롯해 역내 다양한 국가들과의 관계까지 재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일 협력강화 역시 그 일환으로써 언급되고 있다.

이토록 중요한 의의를 갖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동안 한국이 한반도를 넘어 미중갈등 구조와 인도태평양 지역, 범세계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와 외교비전에 대한 논의는 턱없이 부족했다. 철학적 고찰의 부재는 결과적으로 민관 영역이 뒤섞인 ‘백신 파트너십’과 ‘반도체·기술 파트너십’을 띄우는 결과만 낳았다. 중국의 부상을 이유로 외치는 ‘등거리 외교’ 역시 한국을 패권경쟁 구조에서 종속적인 행위자로 전제하고 있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대외적 비전을 다루진 않는다.

한미 정상회담의 막은 이미 올랐다. 한미 공동성명이 추상적인 수준에 그친다면, 결국 한미 양국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권역에서의 위협과 상호 역할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한미 공동성명에 구체적인 의제들이 담긴다면 인식을 촘촘하게 같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급변하는 아시아와 한반도 정세 속 한미동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숲’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으니 어느 쪽이 우리에게 ‘이익’일지는 결과물을 보고 나서야 논의할 수 있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세력재편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지금, 한국이 바라는 한미동맹이라는 ‘숲’은 무엇인가.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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