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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석 추기경 선종] "행복이 바로 하느님의 뜻"…선종 후 각막기증
60년 사제의 길, 낮고 소박한 삶 지향
정진석 추기경.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정진석 추기경이 2012년 명동 주교관을 떠나며 한 말이다. 정 추기경은 최근 병세가 위중한 상태에서도 주위에 이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나의 부족함으로 알게 모르게 상처받은 이들에게 부디 용서해주시기를 바란다.”는 말도 남겼다.

한국 천주교의 두 번째 추기경, 니콜라오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향년 90세. 60년 동안 사제의 길을 걸어온 정 추기경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사목 표어로 삼아 소박하고 낮은 삶을 지향했다.

평소 생명운동을 이끌었던 정 추기경은 한마음한몸동운동본부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으며, 선종 후 각막기증이 이뤄졌다.

고인은 1931년 서울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4대가 천주교 신자다.

어려서부터 주교가 되는 꿈을 꾼 소년은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신부님을 보조하는 복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사춘기 시절엔 해방 공간에서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공산주의 사상에 빠지기도 했으나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재학 중 발발한 6.25전쟁에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경험한 후 사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는 이미 죽은 몸이고, 나머지 인생은 많은 사람에게 뭔가 좋은 일을 하라고 하느님이 덤으로 주신 삶이라고 여겼다.

1961년 사제가 된 후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했으며,1970년 만 39세로 당시 국내 최연소 주교가 됐다. 1970년부터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낸 그는 1998년 김수환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대주교)에 임명돼 2012년까지 담담히 역할을 수행했다.

2006년엔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은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이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후에는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서 지내며 저술활동을 해왔다.

정 추기경은 ‘저술사목’‘학자사목’으로 불릴 정도로 평생 집필 열정을 이어왔다. 책에 빠져 살던 소년, 책을 읽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던 그는 신학생 시절, 매년 한 권의 책을 내겠다고 서원한다. 그 다짐은 1955년 ‘성녀 마리아 고레티’의 번역을 시작으로 저서나 역서를 해마다 펴내며 이어져왔다. 특히 교회법의 권위자로 총15권의 교회법 해설을 펴냈고, 다수의 수필집과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책들을 출간했다. 대부분 한국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책들로 평가된다.

정 추기경은 민주화 이후 노출된 많은 사회갈등 속에서 교회가 중심을 잡는데 역할을 해왔다. 정치적 발언을 대놓고 하진 않았지만 국민을 위한 정치를 수시로 강조했다.

또한 생명존중과 이를 위한 교회의 역할에도 앞장섰다.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신성한 것으로 낙태금지와 인권존중에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복지재단 꽃동네 설립에도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추기경은 2000년대 중반 비극적인 가족사가 알려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얼굴을 본 적 없는 부친 정원모 씨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 옥살이를 하고 광복 이후 북한 정권에서 화학공업성 차관까지 지내다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개인적 비극이자 민족적 아픔이라고 술회했다.

정 추기경의 빈소는 명동대성당에 마련됐다. 일반신자의 조문은 28일 오전 7시부터 코로나 19로 인해 성당 안에서 거리두기를 지키며 진행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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