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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車 노사 손잡고 달릴 때…韓 노조, 철밥통 되레 키웠다 [Shape New Korea ⑦한국 제조업 노조]
美·獨, 비용급증 탓 파산위기 몰리자
협력적 노사관계로 ‘뼈깎는 구조조정’
국내 완성차업계는 ‘임금·고용 지키기’
구시대적 강경 노선에 세대 갈등 키워
전문가 “임금·노동유연성 경쟁력 핵심”
“전기차 전환 등 맞춰노사관계 전환을”


지난 2009년 제너럴모터스(GM) 노조는 고비용 구조로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이중임금제와 파업 금지, 노동 유연성 강화에 동의하면서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형성했다.

GM은 미국에 물량 배정의 우선순위를 두고 해고자 고용 등에 합의했다.

경영손실에 대한 책임 분담 차원에서 경영진을 교체하고, 기존 주주의 주식도 전액 감자했다. 이후 GM은 수입 자동차의 물결 속에서 6년 뒤 2배(2009년 119만대→2015년 214만대)에 달하는 생산성을 확보했다.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그려졌다. 터키와 루마니아보다 낮은 원가 경쟁력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르노(Renault)가 폐쇄 위기에 처하자 노조는 실질임금 삭감과 근로시간의 탄력제를 제안했다. 고정비 절감을 통해 사측은 개발한 신차를 성공적으로 공정에 투입했다. 그 결과 생산물량은 2012년 29만대에서 2016년 58만대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 전환을 가속하는 가운데 과거의 성공사례가 주는 의미는 크다. 새로운 노사관계가 정착되면 생산성을 반영한 임금체계를 구축할 수 있고, 단체협상이나 교섭주기 등을 개선할 수 있어서다. 이는 결국 일자리 유지와 확대의 가능성을 높이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직면한 상태다. 최근 폭스바겐(Volkswagen)은 전기차 투자 비용을 확보하고자 최대 5000명의 직원을 감축하는 청사진을 내놨다. 포드(Ford)는 내연기관차를 생산하는 브라질 공장 세 곳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구조조정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다임러(Daimler)는 2만명의 인적 구조조정을, BMW와 GM은 각각 1만6000명, 1만4000명의 인력을 줄였다.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독주에 맞서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으로 변곡점을 찍으려는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국내 완성차 기업은 정반대다. 글로벌 업계가 일손을 줄이는 사이 지난해 국내 인력은 더 늘었고, 대립·갈등적 노사관계는 계속됐다. 호봉제 임금체계와 특권만을 주장하는 노조의 성향이 노사 불신과 임금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특히 조기퇴직 제도를 시행한 일본과 달리 65세 정년을 법제화해 달라는 노조의 요구는 세대 갈등으로 변질되고 있다. 생산직 중심의 노사 교섭에 불만을 느낀 현대차의 사무·연구직 직원들이 별도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 노동시장 순위는 여전히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 자료를 살펴보면 2019년 기준 국내 노동시장의 경쟁력 가운데 ‘노사간 협력’ 순위는 141개국 중 130위로 전년 대비 6계단 하락하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임금결정 유연성(84위)’과 ‘고용 및 해고관행(102위)’, 정리해고 비용(116위) 등 세부 지표 역시 노동시장 경쟁력에 최대 걸림돌로 평가됐다.

파업 강도와 규모면에서도 선진국과 다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매년 이뤄지는 임금 및 단체협상은 장기간 교섭으로 경영손실을 야기하고, 크고 작은 파업이 현장에서 재연되고 있다. 1962년 이후 무분규를 지속하는 일본과 소규모 파업만 이뤄지는 독일과 대비된다. 상급단체와 연계돼 기업과 관계없는 정치·사회적 이슈가 포함되는 국내 노조와는 기조가 다르다는 의미다.

30여 년 전 형성된 노사 관련 법 제도가 국내 노조에 우월한 교섭력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국내에서 쟁의 조정제도는 실효성이 없고, 파업의 적법성을 부여하는 절차로 사용되고 있다. 조합원 과반수 찬성으로 파업이 가능하다는 점과 파업에 따른 대체근로가 불가하다는 점도 맹점으로 지목된다. 임금교섭(1년)과 단체교섭(2년) 주기를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산업은행이 쌍용차 노조에 임금협상 주기를 3년으로 제안한 것도 이런 논란의 연장선이다.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새 투자자를 찾는 과정에서 소모적인 갈등을 자제하고 흑자 전환에 매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한국지엠도 이런 이유로 노조와 임단협 교섭에서 2년 주기의 협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쟁의행위 절차가 엄격하고 대체근로가 허용되는 선진국의 사례를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직계열화된 완성차 시장이 전기차로 대변되는 모빌리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 근거로 지목된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이사는 “인건비와 노동 유연성 등 노사 관계가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핵심적인 경쟁요인”이라며 “선진국과 같이 파업 찬성률을 높이고 노조의 파업권에 대응하는 조치로 대체근로 활용을 허용해 최소한의 방어수단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기술 혁신과 고령화 등 환경변화에 노동 문제가 산업 붕괴와 대량 실업의 요인으로 커지고 있다”며 “노동 현실과 환경변화에 맞도록 노동 기본권을 재정립해 기업의 생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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