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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9년 전 궁중예술의 재해석…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야진연’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공연 ‘야진연’
궁중예술 통한 희망과 위로

'야진연' [국립국악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대를 꽉 채운 LED 벽면으로 폭포수가 떨어진 뒤, 커다란 연못을 이루자 태자와 고종의 행렬은 배에 오른다. 원형의 무대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했다. 무대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뱃머리이기도 하고, 그것 자체로 '무릉도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무대의 바닥은 연꽃과 복숭아 모양을 형상화했다. 조선의 건국을 송축하기 위해 지은 '정동방곡'이 울리고, 고종은 이 세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그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라는 상징성이 부여됐다. 119년이 지나 다시 열린 '야진연'(夜進宴)은 대한제국 시절의 축제를 재해석해 관객과 만난다.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 공연 '야진연'(4월 9~14일·국립국악원 예악당)을 연출한 조수현 감독은 8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프레스 리허설에서 "'야진연'을 오늘날에 어떤 의미로 전달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며 "드라마로 풀어낸 부분은 고종과 태자의 관계였다"고 말했다.

1902년 4월,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이 51세를 맞아 기로소(耆老所, 조선시대 원로들의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에 입소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궁중잔치 진연(進宴·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에서 베푸는 잔치)이 열렸다. 왕의 장수를 축하하는 의미를 담은 행사로, 그 중 황태자가 황제에게 올린 '야진연'은 밤에 열린 잔치였다.

조 감독은 "고종과 태자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궁금증을 가지며 '야진연'을 해석했다"며 "순종은 담담하게 아버지에게 술을 올렸을 거라고 보고 작품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상상력이 가미돼 새로운 드라마를 포함한 '야진연'은 2021년 관객을 위한 친절한 배려이자 색다른 재미다. 조 감독은 "공연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수민쌍관으로 보여줬다"며 "앞에선 고종을 기로소로 보내는 모습을 태자가 바라보고 있고, 마지막 장면에선 태자가 나와 아버지가 올랐던 계단을 응시한다. 기로소를 무릉도원으로 표현해 상징적 의미를 주며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야진연'은 국립국악원이 소장한 '임인진연도병'에 담긴 조선 왕실 잔치 중 여덟번째 기록을 바탕으로 했다. 경운궁(현 덕수궁) 함녕전에서 저녁 잔치로 열린 진연 중 의례를 제외하고 음악과 춤이 중심이 된다. 원래 의례를 중심으로 연주와 궁중무용이 진행됐지만 열두 종목의 궁중무용은 여섯 종목(제수창, 장생보연지무, 쌍춘앵전, 헌선도, 학연화대무, 선유락 등)으로 줄였다.

유정숙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은 "왕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장생보연지무, 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를 바치며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헌선도를 관객과 나누며 건강한 일상을 되돌아보자는 염원을 담았고, 담백하고 절제된 동작의 학무연회대무, 춘앵전을 통해 궁중무용이 담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유 감독은 그러면서 "궁중무용의 정수를 추려 무대에 올렸다"며 "이번 공연을 보고 찬란하고 깊이있는 소중한 궁중예술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또 정동방곡, 여민락, 수제천, 해령 등 궁중음악도 연주된다. 이상원 국립국악원 정악단 음악감독은 "이전의 국립국악원 공연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음악을 구성했다"며 "다만 당시에 곡에 대한 설명이 의궤에 나오기는 하나 아명으로 표기됐을 뿐 악보가 없어 곡 구성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야진연'은 정악의 품격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간 국립국악원이 선보인 다양한 고증 공연과 달리 '야진연'은 우리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고 재해석해 궁중예술에 대한 문턱을 낮췄다. 특히 국립국악원의 공연이 대부분 낮에 한 공연이었던 반면 '야진연'은 밤에 하는 공연이라 LED 영상을 통해 "아득한 밤하늘의 모습이 판타지"로 연출된다.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때에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야진연'이 건네는 희망과 위로가 의미를 더한다.

조 감독은 "축제에서 한바탕 놀고 나면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살리고자 했다"며 "코로나로 힘든 일상에서 축제의 의미를 되새기며 내일을 살자는 의미를 공연에 담았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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