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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여성 “세 모녀 살인·스토킹 남 일 아냐…택배도 남자 이름으로 받아”[촉!]
쓰레기통, 택배상자 뒤져 “음식 왜 2인분 시켰냐” 추궁
여성들 “스토킹 피해 주위에서 흔해”
“무서워서 경고·경찰 신고도 못해”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인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A씨가 4일 오후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1. 직장인 이혜지(25·가명) 씨는 지난 4월 전 애인 A씨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 A씨는 이씨의 택배 상자, 내다버린 쓰레기통에서 배달 음식 영수증을 뒤져 “어제 누구와 있었냐, 음식은 왜 2인분을 시켰냐”며 김씨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헤어지고 이씨는 곧바로 현관 비밀번호도 바꿨지만 어느날 새벽,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침입하는 일이 발생했다. 알고보니 A씨가 몰래 침입한 것이었다.

#2. 8년 째 서울에 홀로 살고 있는 직장인 김모(28) 씨 몇 달 전부터 택배 수령인 이름에 본명이 아닌 ‘조○○’으로 받고 있다. 지난 설 연휴 새벽 3시께 혼자 있던 집에 누군가가 침입하려고 현관 잠금장치의 경보기가 울렸던 일이 계기였다. 오피스텔 입구를 제외하고 복도, 현관 앞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었기 때문에 상황을 확인하지 못한 김씨는 경찰에게 “순찰을 강화해달라”고만 당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 노원구에서 김태현(25)이 20대 여성을 스토킹하다가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처럼 여성들에게 스토킹과 잇따른 범죄는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여성들은 “주위에 한번쯤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지만 대부분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며 이번 사건에 분노했다.

이씨는 “스토킹이 있고 난 뒤 6개월 동안 자는데 누군가 집에 들어오는 악몽에 시달렸다”며 “택배 주소도 회사로 변경하거나 애인의 이름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번 세 모녀 살인을 ‘살인범 김태현이 사이코패스거나 정신병력이 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넘길 수 없다”며 “사소하거나 심각한 수준에서 주위 여성들은 찝찝한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김씨도 “6년 전, 3년 간 사귄 전 애인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6개월 간 매일같이 집 앞에 찾아온 전 남자친구는 김 씨의 뒤를 밟다가 다른 남성과 걸어가자 붙잡아 옆의 남성이 누구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그 사람이 집주소, 전화번호를 다 알고 있으니 무서워서 단호하게 얘기도 못하고 달래서 보내는 수준이었다”며 “인천인 본가로 이사하고 나서야 스토킹이 멈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세 모녀 사건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며 “여성들은 스토킹 피해가 있어도 당사자에게 단호히 경고하거나 경찰에 신고조차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에 혼자 사는 26세 직장인 B씨도 “평소 택배를 ‘김○○’이라는 남자 이름으로 받지만 이번 노원구 세 모녀 사건을 보고 좀 더 험악한 이름으로 바꿔야하나 고민했다”고 했다. 평소 택배와 배달 음식을 받을 때에도 대면으로 받지 않고 문 앞에 놓아달라고 한다는 B씨는 “(피의자)김태현이 피해자의 집 주소를 택배를 통해서 알아내고 집안에 남성이 없는 것을 눈치채 범행을 저질렀다”며 “이렇게 해서라도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윤모(25) 씨도 “대학생 시절 신촌에서 자취할 때 근처에 살던 언니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날 같은 층 명문대 남학생이 몰래 문을 열고 침입한 적이 있었다”며 “이 남학생은 언니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보고 비밀번호를 알아냈다”고 했다. 윤씨는 “이미 수많은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불안을 늘 느끼고 있는데, 사이코패스 한 사람의 소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스토킹에 대한 사회적 제도나 문제 의식을 개선할 생각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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