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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정책의 되새김질, 발전의 밑거름

올해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가축 중 하나이자, 사람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는 ‘소’의 해다. 소는 소화하기 어려운 억센 풀을 먹고 이를 다시 되새김질을 해서 완전히 소화시키는, 이른바 ‘반추(反芻)동물’이다. 흥미롭게도 되새김질을 오랫동안 하는 젖소가 소화흡수를 더 잘하게 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한다는 최근 연구 결과가 있다. ‘소의 해’를 맞아 이러한 되새김 관점에서 산업 분야 국가 연구·개발(R&D) 혁신 정책에 대해 생각해본다.

2019년 7월에 있었던 일본 수출 규제는 우리나라 산업 R&D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비상이 걸린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핵심 소재를 조속히 국산화하기 위해 R&D 제도를 개편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평상시 3~4개월 걸리는 정부 R&D 수행기관 선정을 초단기간 내 할 수 있도록 ‘정책 지정’ 방식을 도입했고, 과제도 주관기관이 단독으로 먼저 시작하고 나중에 참여기관들을 합류시킬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를 통해 기술 개발을 신속하게 착수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핵심 소재의 국산화에 성공해 반도체산업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신속한 제도 변경이 가능했던 것은 마치 소의 되새김질과 같이 예전에 수립했었으나 활용되지 않고 있던 정책 방안들을 다듬어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란 말이 있다. 새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이미 다른 누군가에 의해 생각되었던 적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에 적합한 아이디어를 찾아내 세부 조정한 후 적시에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대학 본고사’의 경우 시대환경에 따라 ‘도입-폐지-수정’돼왔으며, 현재는 수시·논술고사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 대응 필요성에 의해 수립된 ‘2050 탄소중립 전략’은 2009년에 발표된 ‘저탄소 녹색성장 국가전략’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 저감,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통해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신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두 정책의 기본 철학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국판 뉴딜(디지털 뉴딜·그린뉴딜)’정책도 미국이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한 ‘뉴딜 정책(국가가 시장경제에 적극 개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정책, 제도들은 시대에 따라 필요 여부가 달라지고, 당시 환경에 따라 변형돼 적용되는 것이다.

산업 R&D 정책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2010년부터 ‘산업 R&D 혁신방안’을 지속적으로 수립하면서 산업 R&D 시스템과 제도를 개선해오고 있다. 그간 산업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R&D 정책을 발굴했고 일부는 제도화돼 운영 중이다. 시대에 맞지 않아 제도화되지 못했거나 잠시 시행하다 폐지된 정책들도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정책 중 현재 상황에 맞는 정책의 재활용이 필요하다. 마치 ‘흙 속의 진주 찾기’와 같이 말이다.

현대는 ‘뷰카(VUCA)의 시대’다. 뷰카는 변동성(Volatility)·불확실성(Uncertainty)·복잡성(Complexity)·모호성(Ambiguity)의 의미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뷰카 시대에는 나아갈 방향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속도도 중요하다. 속도에서 뒤처지면 패자가 되는데 특히 첨단기술 R&D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R&D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신기술 개발 촉진 정책을 신속하게 고안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존에 있던 좋은 정책들을 적시에 재발견해 새롭게 활용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 또한 필요할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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