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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껏 돈 들여 분리해도 ‘재활용 불가’…커피캡슐의 배신 [환경감수성]
최근 ‘홈카페’ 감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캡슐커피머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등 인증 후기가 넘쳐나지만 커피 캡슐 재활용이 어렵다. [박로명 기자]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홈카페’ 감성을 완성하려면 이 커피머신이 필수품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하면 게시물만 4만9000여개가 나올 정도인데요. 크기는 작지만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고요, 커피 캡슐만 넣으면 진한 에스프레소가 자동으로 추출되는 게 인기 비결입니다. 그런데도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바로 ‘죄책감’입니다.

이 커피 캡슐은 재활용할 수 없습니다. 다른 브랜드의 커피 캡슐과 다른 점이죠. 단단하게 밀폐된 플라스틱(폴리프로필렌) 용기 안에 담긴 커피 찌꺼기 때문에 분리배출이 어려워서인데요. 이 업체는 미국에선 ‘캡슐 수거 프로그램’을 운용합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선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포기할 ‘의지의 한국인’이 아니지요.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캡슐 ‘오프너’를 사용한 후기가 많습니다. 비매품인 따개를 사다가 직접 캡슐 뚜껑을 분리하고 그 안에 든 커피 찌꺼기를 분리해 재활용하는 이들이 올린 것이죠. 이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도 ‘오프너를 사용하면 분리수거가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정말 사실일까요?

직장인 박소연 씨는 캡슐 오프너를 구입해 블로그에 사용후기를 공유했다. 오프너로 커피 캡슐을 분해하고, 커피 찌꺼기를 모으고, 플라스틱 용기는 분리 배출했지만 결국 재활용이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박소연 씨 제공]

평소 오프너를 이용해온 소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평소 배달음식 주문을 자제하고, 고체 비누와 천연 수세미를 사용하며, 페트병 생수 대신 물을 직접 끓여 먹을 정도로 친환경 습관에 민감한 이들입니다. 커피 캡슐 오프너를 쓰는 것도 ‘제로 웨이스트’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여러 커피머신 중 고민하다가 맛이 좋다고 하기에 구매했어요. 검색을 해보니 (오프너를 사용하면) 분리배출이 가능하다고 해서 믿었어요. 한 달에 60~80캡슐을 분해해 원두 가루와 플라스틱 용기를 따로 버리고 있어요.”(직장인 서주희 씨)

“저는 커피 캡슐이 재활용이 어려운 줄 모르고 구매했어요. 일회용품을 한꺼번에 모아 버릴 때마다 죄책감이랄까, 책임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1만2900원짜리 오프너를 주문했고, 현재까지 캡슐을 분해해 분리수거하고 있어요.”(직장인 박소연 씨)

〈환경감수성〉 코너에서 환경과 관련한 일상의 이야기를 알려주는 캐릭터 ‘코룡이’. [권해원 디자이너]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벽’에 부딪혔습니다. 오프너로 뚜껑을 따고 커피 찌꺼기를 빼낸 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플라스틱 본체에 있었습니다. 원두가 담기는 용기의 추출구가 실리콘 재질로 돼 있기 때문이죠. 이건 재활용이 될까? 제조사에 문의했더니 “오프너로 캡슐을 분해한 후 분리배출하는 것은 행정구역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환경부의 답변은 훨씬 명확했습니다. 자원재활용과 관계자는 “플라스틱에 실리콘과 같은 재질이 붙어 있으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며 “완벽하게 떼어낸다고 해도 커피 캡슐 자체가 작아 따로 모으지 않는 한, 분리배출해도 일반쓰레기로 버려질 확률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커피 캡슐을 어떻게서든 재활용해보려던 소비자로서는 허탈한 이야기입니다. 제조사가 ‘완벽한 재활용은 어렵다’는 안내라도 해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부 송모 씨는 캡슐 오프너를 구매해 플라스틱 본체를 분해하고, 커피 찌꺼기를 버린 후 세척하는 방식으로 분리배출을 해왔다. 하지만 블로그 댓글을 통해 플라스틱 본체의 추출구(상단 이미지)가 투명한 실리콘으로 돼 있어 재활용이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송모 씨 제공]

“브랜드 홈페이지에 오프너를 사용하면 분리배출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어서 믿었어요. 그렇게 6개월을 사용했는데 한 블로그 이웃분이 ‘오프너로 분해해도 플라스틱 입구에 실리콘이 붙어 있어 재활용이 안 된다‘고 알려줬어요. 씁쓸했죠. 공식 홈페이지에 정확한 고지가 필요해요.”(주부 송모 씨)

이들은 환경에 책임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늘어날수록 기업도 더 정교한 환경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도 커피머신 사용 2개월 후에나 알았어요. 놀랐죠. 소비자들이 알음알음 검색해 재활용 방법을 찾아 실천할 정도인데 기업에서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친환경 캡슐을 만들기 어렵다면 해외처럼 캡슐 수거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서주희 씨)

“최근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가 커지면서 관련 영상을 많이 찾았어요. 그 결과, 재활용이 된다고 생각했던 제품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커피 캡슐도 마찬가지여서 실망스러웠어요. 소비를 하면 무조건 쓰레기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책임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있죠. 소비자가 제대로 분리수거하려면 기업도 재활용 가능 여부를 명확하게 고지해야 해요.”(박소연 씨)

〈환경감수성〉은 환경의 입장에서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를 반성하고 행동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유별나게 구는 게 아닙니다. 환경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높을 뿐이죠. 소비자·생산자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환경 감수성’을 자극하는 일상에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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