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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익 감독 “자산어보, 장르영화 아니다…의미 묻는 영화”
출세하고 싶은 어부 창대, 그의 ‘욕망의 눈’으로 본 정약전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은 "정약용과 정약전 사이에 있는 창대를 통해 우리를 읽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지난 31일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는 조선 순조왕때 흑산도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돼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영화다. ‘황산벌’ ‘왕의 남자’ ‘사도’ ‘동주’ ‘박열’ 등 사극과 시대극을 연출해온 그가 이번에는 왜 물고기 도감인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이었을까?

“예전에는 역사를 보는 방식이 망원경으로 들여다봤다. 사건, 연도, 제도, 왕 이름을 외웠다. 이제는 개인주의 시대다. 국가주의, 집단주의라는 덩어리를 벗어났다. 개인주의는 망원경보다는 현미경으로 보는 시대다. 영화에서도 그런 시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시적인 관점보다는 미시적인 관점이 더 적절하다. 거대한 사건이나 영웅적인 이야기보다는 뭔가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는데, 사건 밑을 보면 의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정약전이었다.”

설명이 명쾌하다. 영화도 잘 만들지만, 말도 잘하는 감독이다. 이 감독은 “정약용은 오래 살았고 방대한 책을 집필해 2시간에 담을 수 없다. 16부작은 찍어야 할 정도다. 반면 정약전은 딱 두시간에 담을만했다”면서 “그동안 사극에서 일상성을 다룬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왕과 장수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게 대부분이다. 현대물은 일상성을 다룬 영화가 많은데, 그런 사극은 못봤다. ‘자산어보’는 다른 사극과 그런 차이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설경구가 연기하는 정약전은 실존인물이다. 정약전과 함께 주연으로 나오는 어부 창대(변요한)도 ‘자산어보’ 서문과 본편에 잠깐 등장하는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창대에게는 이 감독이 허구를 많이 입혀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부각시켰다. 창대는 ‘자산어보’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글 공부가 좋은 청년 어부다.

“실존 인물에 적당히 허구를 가미했다. 정약전이라는 인물을 절대 기준으로 서술하면, 한 위인의 일대기가 되고, 한 사람을 지나치게 미화할 수도 있다. 상대적 기준으로 보기위해서는 창대가 필요하다. 마치 동주라는 인물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송몽규(박정민)를 투입했듯이. 정약전과 그의 동생 정약용, 이 중간에 창대의 여정을 집어넣어 우리를 바라보게 했다.”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는 장르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장르영화는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는데, 이 영화는 의미를 묻는 영화라는 것.

“의미는 재미라는 수단을 통해 도달한다. 창대의 재미는 자신에게 내재된 욕망이 변화하는 데서 나온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거다. 창대는 약용의 세계관(목민심서)과 약전의 세계관(자산어보) 중간에서 만날 수 밖에 없다. 허구를 위한 허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필연적으로 창작된 거다.”

인터뷰를 할수록 이준익 감독이 ‘자산어보’에 집착한 이유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조가 형(약전)이 동생(약용)보다 더 낫다고 했다고 할 정도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지금도 유효한 사상이자 정치 이념서다. 유교학자라면 이런 인문서적을 쓰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자산어보는 자연과학이다. 선비가 선택한 것 치고는 의외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 시대에는 집단의 가치, 공통체 의식이 중요했다면, 21세기 현 대한민국의 대체적 세계관은 개인주의다. 집단주의의 공동선(善)을 위해 쓴 것이 목민심서다. 자산어보는 이용후생, 실사구시다. 집단적 의식에 대한 강박 없이 개인의 관찰을 통해 이뤄낸 이야기다. 그 주체는 정약전이지만, 그것을 발생할 수 있게 한 것은 창대다. 창대는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우리 목소리다. 개인차가 존중되는 사회, 수직사회가 아닌 수평사회. 이런 식으로 다 말하지는 않지만 연결시키면 읽어낼 수는 있다.”

이야기가 점점 감독이라기보다는 영화 평론가와 인터뷰 하는 것 같았다. 영화 전체를 꿰뚫어보는 힘, 그 통찰이 대단하다. 이 감독은 ‘자산어보’를 ‘동주’처럼 흑백영화로 만들었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흑백은 환타지고, 칼라는 리얼리티다. 사람들은 흑백은 과거, 칼러는 현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흑백은 칼러보다 더 쉽고 또 더 어렵다. 흑백은 이야기를 하는데 선명하게 부각시키기는 좋다. 하지만 어려운 점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지 않으면 흑백은 금방 들킨다. 칼러는 시각 총량이 많아 페이크를 하면 넘어가지만, 흑백은 거짓말을 못한다.”

그의 흑백톤 설명은 이어진다. 그의 대학시절 전공은 동양화다. 시각창작 전문가답다.

“흑백의 수묵화는 칠하면 안된다. 여백과 관계로 이뤄진다. 채워서 하는 게 아니다. 채울 때는 비울 것을 생각해야 한다. 흑백은 공간을 더 크게 보게 할 수 있다. 칼러는 그렇게 찍으면 인물이 아닌 주변 풍경이 보인다. 영화를 보면 이상한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될 거다. 절벽에 있는 커트를 보면 웅장하다. 사실은 배우만 세워 놓은 것이다. 밤 신인데 낮에 찍어 어둡게 한 것이다. 밤에는 피사체를 담아낼 수 없다.”

흑백컬러영화 이야기는 끝이 없다.

“컬러(영화)는 역사의 인물이 우리에게로 다가온 것 같다. 흑백은 우리가 과거의 인물로 다가간 것 같다. ‘동주’도 내가 동주가 있는 그 시대로 쑥 간 것 같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분도 설경구가 절벽에 서있는 신이라고 했다. “그 곳은 신안군 도초도(都草島)다. 천사대교가 생겨 배를 조금만 타면 갈 수 있다. 여기 있는 자산어보 세트장에 한번 가보시라! 날이 좋으면 흑산도도 보인다.”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를 10년후에도 자기 자리에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다고 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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