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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아빠의 땀으로 아이는 자란다[아빠는 뚠뚠]

5살 아들 J와 커리어우먼 아내 R과 함께 살아가는 아빠입니다.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1주일간의 만삭체험기’를 썼고, 아이가 자라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보자고 다짐했습니다. TV에 나오는 100점 짜리 아빠가 아닌, 실수도 많고 이기적인 욕심도 많은 평범한 아빠입니다. 대단한 경험과 지혜의 공유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 특히 아빠들에게 작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어느 신도시의 아파트 놀이터에는 주말 아침이면 유령이 떠돌고 있습니다. 바로 아빠라는 유령이죠.일어나자마자 세수 할 새도 없이 나온 것이 분명한 그 앞에는 “깔깔”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빠들은 마치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아이의 뒤를 따라다니거나, 그도 지쳐 놀이터 의자에 주저앉고 맙니다. 그러나 유령은 쉴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가만히 둘 리가 없죠.

본격적인 놀이터 탐험에 앞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J군(남.당시 약 12개월)

물론 유령은 아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들 역시 졸린 눈을 비비며 유령 행렬에 동참하죠. 저희 가정의 경우 ‘몸을 쓰는 바깥 놀이’는 아빠와 하는 것이란 무언의 합의를 하고 지켜가고 있습니다.

특히 아들이다 보니 아무리 제가 감언이설과 사탕으로 유혹해도 엄마 만큼의 유대감을 가지기는 어려운 것 같아, 몸으로 노는 놀이로 아들에게 잘 보이려는 계획을 짰습니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주중에는 장모님께서 양육을 책임지시는데요. 아내와 저는 주말만큼은 밀린 육아를 온전히 하자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나름 서로가 중점적으로 수행할 역할을 분배하며 후회없는 주말을 보내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주말의 끝엔 피로에 젖은 육신의 한계를 탓하며 자괴감에 빠질 때도 많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놀이터의 유령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처음 1살 무렵엔 거의 유모차를 타고 다니기에 그렇게 육체적으로 힘들진 않습니다. 유모차를 끌며 놀이터를 빙빙 도는 '탑돌이'가 대부분이죠. 휴일 아침이면 저와 같이 유모차를 끌며 마치 성지순례 하듯 놀이터를 도는 아빠들이 많았습니다. 이 때는 졸림 말고는 크게 불편함이 없습니다.

특히 유모차 손잡이에 몸의 중심을 살짝 기대면 “아 어르신들이 이래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는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때문에 아이를 낳으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반드시 핸들링(아이의 승차감도 물론 중요합니다)을 고려해 유모차를 고르시길 바랍니다.

아장아장 걸으며 탐험하는 시기의 J군(갓 돌이 지난 시기), 한창 호기심이 많은 시기라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아이가 돌이 지나 아장아장 걷는 시기가 옵니다. 이 시기는 혹여 놀이터 기구에서 넘어질까 싶어 반경 1~2미터를 두고 근접 대기를 합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미끄럼틀을 타는 것도 긴장의 연속이죠. 저희 아이는 그네 타는 것을 유독 좋아했는데요. 당연히 혼자서 반동을 일으키며 탈 리가 없기에 무한히 그네를 밀어주고 또 밀어줬습니다.

그러다 그네가 지겨워지면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걷거나 또는 뭔가 무리해서 뛰려고 하는데요. 이 때 아기가 넘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습니다(요즘 대부분의 놀이터는 우레탄으로 바닥 처리를 하기에 큰 부상이 발생하진 않습니다만, 연약한 아이의 피부에 멍이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아이의 가장 귀엽고 예쁜 모습입니다. 뒤뚱거리며 낯설고 신기한 세상을 탐험하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빠들은 적당한 체력 안배를 통해서도 아이와 충분히 즐겁게 놀 수 있는 시기죠.

4살이 넘어가면서 잘 뛰어다니는 시기가 되면 이제 아빠의 땀이 본격적으로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때부터 아이는 아빠와의 술래잡기라는 신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짧지만 다부진 다리로 우다다 뛰면서 힘겹게 도망치는 아빠를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죠. 마치 치타와 표범처럼 말이죠(실제 저희 아이는 자신이 치타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아빠는 치타로 빙의한 아이에게 적당한 선을 지키며 도망쳐야 합니다. 너무 빨리도 그렇다고 너무 쉽게도 잡혀서는 안됩니다. 아이의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선 잡힐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하면서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그러다 가장 아이의 텐션이 폭발하는 그 타이밍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잡혀야 합니다(마치 그 모습을 누군가 지켜본다면, 늙고 배 나온 가젤로 빙의한 아빠의 처절함에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실 겁니다).

분명 본인은 치타라고 주장하지만 누가 봐도 공룡 흉내를 내는 J군(당시 4살)

이렇게 놀이터 사냥 놀이(저희 아들이 붙인 이름입니다)를 30분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아빠의 도가니가 살려 달라는 신호를 보내죠. 그러나 아빠는 자의적으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이 합세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분명 본인의 부모님과 함께 나온 아이들인데 왜 그러는 걸까,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분명 저보다 육아 선배로 보이는 상대 부모는 저에게 ‘잘 부탁한다’는 무언의 눈빛을 보내기도 하죠.

얄밉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경험이 쌓이며 “아 이것이 공동 육아인가”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가끔 마음 맞는 아이 부모(주로 아빠들입니다. 어머님들은 술래잡기를 잘 안 하시더라구요)를 만나게 되면, 번갈아가면서 치타로 빙의한 아이들의 사냥감이 되곤 합니다. 이렇게 또 30분 가량을 보내다보면 상대 아이의 아빠와는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것도 형성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진 않습니다(어머님들의 경우 아이를 매개로 이야기를 잘 건네시던데, 아빠들은 좀 어색하십니다).

신나게 땀을 흘렸으면, 갈증을 해소해야합니다. 아빠도 같이 목마른데 아빠는 아이스크림 절대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아 이제는 체력의 한계다’ 싶은 순간이 옵니다. 그 때 구원의 손길, 아니 전화가 옵니다. 바로 점심을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호출이죠. 죽어도 집으로 가지 않겠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한 바탕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교대를 하며 주말 오전의 놀이터 사파리는 끝이 납니다.

오후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함께 외곽으로 외출을 하지 않는 이상, 배를 채운 아이는 다시 밖으로 나가고자 하죠(저희 아이의 경우 3살까지는 밥을 먹고 낮잠을 잤지만, 4살부터는 낮잠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이의 낮잠 시간이 정말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오후에는 가능한 집 놀이터보다는 좀 더 큰 공원이나 야외로 나가려고 합니다. 세종시의 랜드마크인 호수 공원이나 좀 더 나가서는 대전 동물원 등이 주요 코스죠. 야외 활동 외에도 키즈카페도 자주 이용하는데요. 키즈카페 관련해서는 따로 글을 쓰는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할 말이 너무 많아서요).

[사진=게티이미지]

1박2일 여행과 같은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이런 주말이 거의 반복됩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주말이고, 육아지만 소소하게 아이와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 과정에서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아이와 얼마나 땀으로 놀았는지죠. 사실 아빠 육아 입문서와 같은 책들을 여러 권 보면서 머리에 들어온 것이 "아이와 얼마의 시간을 보냈냐보다, 어떻게 놀았냐, 얼마나 집중해서 놀았냐가 중요하다"였습니다.

주중에 거의 집에 없기에(세종과 서울을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양이 부족하지만, 그 만큼 주말에 집중해서, 아이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죠. 특히 앞서 말했지만 엄마와 아이와의 강력한 유대감을 아빠가 비집고 들어가긴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놀이에 있어서만큼은 "아빠와 놀면 재미있다"는 느낌을 아이에게 주고 싶은 거죠. 정말 큰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프지않은 이상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목욕까지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을 계속 하다 보니 아이와의 유대감이 커가는 것을 체감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잘 때는 엄마와 꼭 안겨서 자야 한다며 저를 침대 끝으로 밀어내기 일쑤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선 안됩니다).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내고 행복하게 코를 골며 잠을 자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그 것 만큼의 행복이 또 있을까요?(하지만 왜인지 이렇게 에너지를 쏟아도 아이는 주말이면 아침 잠이 없어집니다. 분명 주중에 어린이집 갈 때는 늦잠을 자는데 말이죠.)

오전 에너지를 쏟고 배를 채운 후 꿀잠을 자는 J군(당시 12개월 정도로 추정)

부모의 땀을 먹고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를 위해, 오늘도 땀을 흘리시는 세상의 모든 아빠, 엄마 여러분들 힘내십시오. 오늘도 뚠뚠입니다!

서상범 기자/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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