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내재된 경제 취약성 호도 위험성

규제완화로 민간 활력·창의력 극대화 절실

포용재정·규제개혁 동시에 추진해야 성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 정치권에서 ‘규제 개혁’ 이슈가 완전히 실종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야는 물론 유력 대선주자들, 경제부총리까지 ‘돈을 어디에 얼마나 쏟아 부을 것이냐’는 논쟁만 하다가 경제를 살리는 본질적 해법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규제 개혁 없이 포용적 확장재정만으로는 양극화 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자영업자 위기·양극화 심화...다 코로나19 때문일까=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양극화 해소’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에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 위기가 더 크게 다가온 계층에게 재난지원금이란 이름의 국가재정을 쏟아부었고, 앞으로는 더 화끈하게 쏟아붓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서 경제적 왜곡을 풀어낼지만 궁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코로나 특수를 누린 배달 플랫폼업체 등의 이익을 공유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경제전문가들은 이같은 방식이 양극화 해소의 근원적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고 우려한다.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지원해야하는 건 맞지만, 코로나가 한국경제 위기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건 맞지만 사실 노동시장 교란 등의 변수로 인해 코로나 전부터 이미 많이 무너지고 있던 게 사실”이라며 “코로나로 모든 문제의 이유를 호도하면 안된다”고 꼬집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이미 한계에 내몰려 있었던 만큼 원인을 전부 코로나 탓으로 돌려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가 심화시킨 양극화의 본질은 ‘규제의 역설’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경제 양극화는 본질적으로 규제를 강화할수록 커지는 이른바 ‘규제의 역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고 최저임금을 올렸는데 실제 저임금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올라도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소득이 안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재난지원금 지급은 양극화 해소의 근원적 대책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확장재정 ‘큰 정부’ 동시에 규제 철폐도 할 수 있어야 =전례없는 위기 상황인 만큼 확장재정 투입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다만 재정 정책에서 ‘큰 정부’를 지향한다고 해서 기업 규제에 도 반드시 ‘큰 정부’가 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동일하게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 재정을 적극적으로 쓴다는 게 꼭 규제가 많아야 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라며 “경제 규제를 다 없애자는 말이 아니라 상당 부분을 합리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정투입을 확대하는 만큼 새로운 업종이나 사업을 시작하는 것과 관련해 규제를 풀어줘야하는데 그런 부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6일 대한상공회의소가 20~50대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제 21대 국회 입법방향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한 결과 ‘규제의 유지냐 완화냐’를 묻는 설문에서 ‘모범기업의 자율을 확대해야한다’(55.6%)는 응답과 ‘선진국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32.0%)는 응답 등 ‘규제 완화’에 무게를 담은 응답은 ‘현행 유지해야’(12.4%) 응답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보였다.

김태윤 교수는 “국가가 시장에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고 믿는 큰 정부라면 개입해서 무엇을 할지, 개입이 정말 필요한지 생각하고 해야하는데 ‘일단 국가가 일을 벌려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고, ‘뭐가 필요한지’는 나중에 생각하니까 합리적 전개가 가능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규제 샌드박스같은 미미한 제도를 한 나라 규제 개혁의 근간처럼 만들어 놓은 가분수 상태에서 K-뉴딜을 이야기한다”며 “규제를 완화해 민간의 활력과 창의력을 뿜어내는 방향이 아니라, 정부 재정 지출을 늘리고 통제 지향적 스타일로 규제와 제도들을 배열했기 때문에 그 모습을 관찰하는 민간 입장에서는 과감한 투자를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문제도 ‘규제 부작용’...“포용적 제도 설계, 경제 원칙에 맞아야”=부동산 문제 역시 규제 부작용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성 교수는 “부동산 시장에 각종 규제를 집어넣은 게 오히려 부동산 가격, 전·월세 상황을 악화시킨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라며 “개선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고, 김태기 교수는 “부동산 규제를 가했더니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전·월세까지 올라 버린다”며 “땅부자들 혼내주려고 한 공시지가 현실화 때문에 중산층도 세금폭탄을 맞게 생겼다”고 답답함을 표시했다.

전문가들은 ‘포용적 재정을 통한 양극화 해소’와 ‘혁신을 위한 규제 개선’은 ‘좌우의 날개’처럼 동시에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나랏돈만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포용 관련 제도의 설계도 경제 원칙에 맞아야 하는 것”이라며 “경제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서 포용을 한다는 건 어렵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기 교수는 “국민들에게 표를 받기 위해 포퓰리즘이 자라나는데, 그게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고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두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