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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심려 송구한 마음”…‘대통령의 사과’와 ‘3R의 법칙’[정치쫌!]
베벨리 엥겔 '사과의 힘' 통해
"사과에는 유감, 책임, 치유·보상 필요"
책임, 치유·보상 부분은 항상 논란
역대 대통령 모두 유체이탈, 지각사과 논란
문재인 대통령 [연합]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미국의 심리전문가 베벌리 엥겔은 2001년 저서 '사과의 힘'에서, 사과의 요건 3가지를 제시한다. 사과 표명에는 유감(regret), 책임(responsibility), 치유·보상(remedy) 등 이른바 3R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를 줘서 미안하다는 유감의 표시를 하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며, 잘못에 대한 보상이나 치유를 반드시 제시해야 비로소 '사과'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뇌과학자인 정재승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는 공동저서인 '쿨하게 사과하라'를 통해 베벌리 엥겔과 유사한 사과 방법을 제시하면서, '미안해, 하지만…'을 사과의 나쁜 예로 꼽는다. 추리소설 작가인 길버트 체서트톤은 '거만한 사과란 모욕이나 다름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최근 LH 부동산 투기의혹사건으로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께 큰 심려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다. 특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께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를 엄중히 인식하며 더욱 자세를 가다듬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임하고자 한다. 공직자들 부동산 부패 막는 데서부터 시작해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동산 부패 사슬을 반드시 끊어내겠다. 이번 계기에 우리 사회 불공정의 가장 중요한 뿌리인 부동산 적폐를 청산한다면 우리나라가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국민이 함께 뜻 모아주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LH 투기 의혹 사건과 관련해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내놓은 사과다. 문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엥겔이 말한 사과의 요건, 3R을 어느 정도 따른 듯하다.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며, '유감'을 표시했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임하겠다"며, '책임'을 언급했다. 또 '부동산 부패 사슬을 반드시 끊어내겠다'며, 치유와 보상을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사과'는 정치권에서는 논란이 되기 십상이다. 특히 엥겔의 사과 요건 중, '책임' 부분과 '보상과 치유'의 방식을 놓고서는 공방이 벌어지기 일쑤다. '책임'과 '보상과 치유'방식이 명확지 않을 때는 '유체이탈 사과'라는 비판이 나오기 쉽다. 특히 '지각 사과'도 대통령의 사과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에 자주 등장한다.

문 대통령의 이번 사과를 두고 야당은 '사과 시점'을 문제 삼았다. 문 대통령이 '적폐 청산'을 '보상과 치유'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도 함께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사과는 지난 2일 LH 투기 의혹이 불거진 이후 한참 후에나 나왔다. 그 사이 변창흠 국토교통부장관이 지난 5일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LH와 관련된 문 대통령의 지시가 잇따라 나왔다. 사과 없이 지시를 내리는 문 대통령을 향해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는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의혹이 제기된 지 14일 만에 문 대통령이 사과를 하자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사과에 주목한다. 야당의 요구나, 국민 3분의 2 여론에 등 떠밀리기 전에 사과하셨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이 LH 투기 의혹을 '부동산 적폐'로 규정한 것에 대해 "책임을 비켜나가시려는 모습은 여전히 실망스럽다"며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국민적 믿음이 다시 싹트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관행 등을 '적폐'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청산 작업을 진행해왔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 법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복귀 결정을 내리자 "인사권자로서 사과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내놨을 때도 국민의힘은 "안 하느니 만도 못한 사과"라고 비판했다. 1월 11일 신년사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처음으로 사과했을 때도 국민의힘은 "뒤늦은 사과"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거나 특별기자회견 형식의 사과는 아직 없다. 대부분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회의 등을 통해서 사과가 이뤄졌다. 지난 윤 전 총장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갈등속에 나온 대통령의 사과는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통해서였다.

역대 대통령들의 사과는 어땠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과는 아직도 회자된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지각 사과', '유체이탈 사과'와 '대독 사과' 등이 문제가 됐다. 특히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닌 사과를 받는 대통령이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후 내놓은 박 전 대통령의 사과가 대표적이다.

박 전 대통령은 사고 닷새가 되는, 4월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보며 저뿐 아니라 국민께서 경악과 분노로 가슴에 멍울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왔을 당시, 사과를 해야 할 당사자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고를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등에서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자 사고 발생 14일 만에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번 사고로 많은 생명을 잃게 돼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는 공식사과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형참사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국민 사과를 한 것과 비교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해 훼리호가 침몰한 지 9일 만에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는 3일 만에 사과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화성 씨랜드 화재 뒤 3일 만에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구 지하철 화재 뒤 3일 만에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사과를 하는 당사자가 아닌, 사과를 받는 입장이 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참모들의 비위사건이나 인사문제를 두고서다. 박 전 대통령이 기용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 논란이 되자,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이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윤 전 대변인을 기용한 대통령이 아닌, 홍보수석이 대신 사과를 한 것이다. 사과의 대상에 대통령이 포함된 것도 논란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 세 차례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때 내놓은 사과가 유명하다.

이 대통령은 광우병 촛불 시위로 두 번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국민 담화나 특별기자회견을 통해서다. 이 대통령은 취임 석 달 만에 5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가 국민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한 달 뒤인 6월에도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사과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온 "지난 10일(2008년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봤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다"는 이 전 대통령의 말은 아직도 회자된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4월에는 동남권신공항 공약 백지화한 것에 대해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고, 2012년 7월에는 친인척, 측근비리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과했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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